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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아 I

프리미티보

by 진원재 Willie Chin




겨울의 끝, 추위에 질려 치가 떨릴 무렵인 2월 말에

항상 찾아 마시는 와인이 있다. 프리미티보 Primitivo다.

대부분의 와인샵에 이 와인을 팔고 있다.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며 종류도 많다. 만원 내외로 비싸야 2만 원대인 이 와인은 정말 가성비 끝판왕이다. 나는 겨울이면 한 두 박스를 사둔다. 유일하게 박스로 사는 와인이다. 맛있게 나도 먹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한다. 한 병에 만원 남짓하는 와인을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박스로 샀다고 하면 그 돈으로 고급 와인 한 병 마시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프리미티보가 싼 건 사실이지만 맛까지 싸구려라는 인식은 용납할 수 없다. 진하디 진하며, 블루베리, 딸기잼과 달콤한 담배 맛의 이 와인을 만나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진다. 알코올 도수도 15도로 높은 편이어서 마시면 몸이 빠르게 달아오른다.


이 와인이 생산되는 풀리아 지방은 장화 모양 이탈리아 반도의 구두 굽부분으로 남동쪽 끝이다.

아주 따뜻한 곳으로 진하고 달콤하고 독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 멋진 와인으로 겨울 내내 지친 몸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2월의 프리미티보는 키안티 10병 보다 낫다. 특히 만두리아 지역의 프리미티보 Primitivo di Maduria는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좀 달아서 싫다는 사람도 있다.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설탕처럼 단순히 단 게 아닌 여러 가지 과일들과 담배, 나무, 바닐라가 복잡스레 연상되는 불꽃놀이 같은 달콤함인데.. 진짜 이 것을 즐기지 못한단 말인가! 사탕 2개 먹으면 질린다. 하지만 프리미티보는 첫 잔은 블루베리잼, 두 번째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세 번째는 딸기향 담배. 계속해서 달라져 질릴 틈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매년 2월에 프리미티보를 마시는 나의 루틴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프리미티보 박스 떼기 수가 늘릴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풀리아에서 날아온 따스한 만원의 행복을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Doppio Passo

Primitivo

프리미티보

진한 붉은색

검붉과일향, 담배향, 바닐라향

진하기 4.5

산도 1.0

탄닌 1.5

당도 2.5

1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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