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베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 하면 떠오르는 화이트 와인이 있다. 바로 소아베 Soave 다. 소아베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가르가네가를 메인으로 만든 산뜻한 와인이다. 황금빛이 아름답게 도는 와인인데 향이 그렇게 진하지 않으면서도 맛은 여러 가지 풍성한 열대과일이 입안에서 불꽃놀이 하듯 마구 터진다. 터진 불꽃들은 입안에서 가슴으로 천천히 떨어진다.
특히 파인애플과 풋사과 맛이 강한데 소비뇽블랑처럼 쨍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와 꿀 같은 시원하고도 달콤함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콤한 불꽃놀이와 같은 이 와인은 로미오와 줄리엣 동네 특산품이라서 그런지 애틋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 기운은 과거 아름다운 연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와이프를 처음 만난 날, 나는 강남역 카페에 앉아 있었고, 와이프가 카페로 들어오는 첫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맑은 오후, 와이프가 집 앞 중학교 담벼락을 따라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걸어오는 두 번째 장면이 떠오른다. 먼저 취직한 와이프가 아직 학생이었던 나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사무실로 아쉽게 들어가려는 세 번째 장면에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뭐해!!"
와이프의 고함소리에 소아베로 인한 명상에서 깨어났다. 또 혼자 몰래 부엌에서 와인을 홀짝 거리고 있냐며 와이프에게 엄청 깨졌다. 그래도 연애의 기억은 달콤했다. 순간의 행복일지라도 잠깐이나마 내가 사랑한 와이프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모두 다 사랑의 와인인 소아베 덕이다.
그렇게 예뻤던 와이프와 그녀가 낳아준 두 아이. 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 난 정말 행복하다. 물론 그들은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혼자 와인 마시며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이기적일 수 있는데, 그들의 잔소리와 와인의 마리아주는 아주 끝내준다. 가족들의 음성과 와인 모두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일생에 큰 행운은 3번 정도 찾아온다고 한다. 나는 와이프를 만나서 한번 썼고, 두 아이를 만나 나머지 두 번을 다 썼다. 그런데 이탈리아 와인을 만난 것도 나에겐 큰 행운이다. 그러면 나에겐 4번이나 멋진 행운이 찾아온 것이니, 나는 진정한 행운아가 아닌가.
Suavia
Monte Carbonare
가르가네가
밀짚 노란색
열대과일향, 꿀향, 배향
진하기 2.0
산도 3.5
당도 1.0
3만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