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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V

피노 그리지오

by 진원재 Willie Chin




나는 해산물을 너무 좋아한다. 물론 고기도 좋아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해산물이다. 생선, 조개, 새우, 문어, 굴. 구이, 조림, 찜, 회. 그냥 다 좋다. 휴가는 언제나 산보다는 바다를 향한다. 산속의 상쾌한 느낌도 좋지만, 바다의 비릿한 냄새와 촉촉한 공기가 더 좋다. 그래서인지 난 바다 위에서 살고 해산물을 즐겨 먹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다.


베네치아의 해산물 요리는 맛있기로 유명한데 또 베네치아에서 사랑받는 것이 피노 그리지오 Pinot Grigio 와인이다. 원래 프랑스의 피노 그리가 이탈리아에 넘어와서 재배된 품종인데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가 더 많이 생산되고 더 유명해졌다. 프랑스 피노 그리보다 더 상큼하고 가볍게 만들어서 이탈리아의 해산물 요리와 딱 어울리는 와인으로 만들어냈다.


투명하고 옅은 노란색을 띠는 이 와인은 한마디로 은은한 도우미 와인이다. 달지 않은데 단 느낌이 나고, 같이 먹는 음식들도 단 맛을 감돌게 한다. 예를 들어 새우와 같이 마시면 새우의 단맛이 더욱 강조되어 감칠맛을 돌게 한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향과 맛이 가벼우면서도 강하게 난다. 특히 전체적으로 열대과일들이 날카롭게 치고 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해산물도 좋지만 김밥이나 초밥과도 잘 어울린다. 식초를 살짝 친 흰쌀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절인 그린 올리브와도 천생연분이다.


새콤한 향 때문인지 피노 그리지오를 마시고 있으면 새침한 여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 새침함은 불편하지 않고 밝고 가볍다. 따스한 오후 편안하게 햇살 좋은 테이블에 앉아 새침한 그녀의 투정을 들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그녀의 투정도 누그러진다. 우리는 서로 미소를 나눈다. 그녀는 자갈과 같은 미네랄 느낌도 나면서 매끄럽고 부드러워진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잔에 조금 남은 그녀를 아쉬워하며, 아니 또 만나기를 기원하며, 작별의 삼킴을 나눈다. 꼴깍. ‘Arrivederci!’



ferro13

Lady

피노 그리지오

밀짚 노란색

열대과일향, 사과향, 차돌향

진하기 2.0

산도 3.0

당도 1.0

2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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