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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테

이탈리아 와인 마시기

by 진원재 Willie Chin




이탈리아 사람들은 건배를 할 때 건강을 기원하며 ‘살루테 salute’라고 외친다. ‘친 친 cin cin’이라고도 하는데, 이 건 우리의 ‘짠’과 같이 더 친근한 표현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와인은 우리의 국과 같다. 밥그릇 옆에 국그릇이 있듯이, 이탈리아에서는 식사 때 와인을 곁들이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물론 우리의 국과 같이 와인 없이 식사도 하고, 또 가벼운 안주와 함께 와인만 따로 즐기기도 한다.


안 그래도 종류가 많아 복잡한 이탈리아 와인은 마시는 방법도 천차만별인 듯하다. 엄청 격식을 차리며 와인잔의 종류와 음식 매칭, 순서와 같은 것에 온 열정을 쏟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대충 투명 플라스틱 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 왁자지껄 취하기도 한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는 법에 대해 따로 배우기도 하고 어려워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때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제대로 된 와인의 참맛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런데 와인의 참맛을 즐기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왜냐면 와인은 계속해서 변하는 생물과도 같기 때문이다. 오픈하고 첫 풍미가 한두 시간 뒤의 풍미와 다르다. 또 같은 와인이라도 연도에 따라, 보관 상태에 따라 다 다르다. 변화와 자유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 따지지 말고 그냥 느끼라는 말이 어쩌면 진짜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와인 마시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와인을 그냥 한 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와인과 소개팅을 하듯 눈치를 잘 봐가며 상황에 맞게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와인을 마시는 또 하나의 이유이자 재미이다. 와인을 따자마자 느껴지는 풍미를 통해 첫인상을 판단한다. 자신을 한 껏 뽐내며 급한 성격으로 다가오는 와인이 있다. ‘어.. 이건 바로 마셔야겠는 걸. 조금 있으면 쉬겠다.’라고 판단한다. 아직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신중한 와인이 있다. ‘아.. 한 시간쯤 열어두고 좀 있다가 마셔야겠다.’라고 판단한다.


컬러에서 진하기와 숙성기간을 느낄 수 있고, 붉은 과일향 일지 검은 과일향 일지 같은 것도 예상할 수도 있다. 외모를 보고 성격과 나이를 예상해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직접 향과 맛을 보고 다양한 속내를 느끼고 판단한다. 다소 터프한 이미지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과일향이 가득했는데 나중엔 허브나 숲 속 향이 나기도 한다. 이러한 와인 변화를 즐기는 것이 나를 가장 즐겁게 한다. ‘와인이 변화를 느끼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사를 2~3시간씩 하나?’라고 조금은 과장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솔직히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너무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와인 마시기는 삶을 닮았다.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마주하는 희로애락과 같다.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 운명과도 같다. 그런데 어려운 만큼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내가 복잡한 이탈리아 와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받아 드리고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처럼, 한병의 와인도 운명처럼 받아 드리고 쓰던 달던 나름의 매력을 느끼면서 최대한 즐기면 된다. 그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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