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잔 따라서 유튜브나 책을 펴놓고 홀짝 거리는 걸 좋아한다. 온전히 와인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와인은 음식과 함께할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와인과 음식이 잘 맞는 것을 프랑스어로 ‘마리아주 Mariage’라고 하기도 하고, 이탈리아어로는 ‘아비나멘토 치보 비노 Abbinamento cibo vino’라고 한다. 단순히 음식과 같이 마시는 게 아닌 음식과 화학적 결합을 하듯 풍미가 더 극대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찰떡궁합은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음식 궁합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맛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맛을 구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단맛, 짠맛, 기름진 맛, 신맛, 쓴맛, 매운맛으로 구분하고 이 6가지 맛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좋다.
단맛, 짠맛, 기름진 맛 3가지는 다른 어떠한 맛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신맛, 쓴맛(탄닌/알코올/야채), 매운맛 3가지는 단, 짠, 기름과는 어울리지만 서로 간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맛이 강한 와인은 단, 짠, 기름진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만, 쌉쌀하거나 매운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신맛이 강한 산지오베제 와인은 다크 초콜릿이나 떡볶이와 먹으면 둘 다 맛이 없어진다.
단, 짠, 기름 : 어떠한 맛과도 잘 어울림
- 단짠, 단기름, 단신, 단매움 모두 Good
신, 쓴, 매 : 단, 짠, 기름과는 잘 어울리나 서로는 안 어울림
- 신단, 쓴짠, 매기름 Good
- 신쓴, 쓴매, 매신 : No Good
이것과는 또 다르게 향기가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와인의 강한 오크향은 해산물의 비린 향을 오히려 더 강조시켜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맛과 향에 따라 음식을 매칭 하는 것도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와인과 음식의 환상적인 궁합을 한번 경험하면 그 기억은 중독이 된다. 계속 찾게 되고, 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시칠리아의 화이트 와인(신맛)과 그린 올리브(짠맛)를 같이 먹었을 때 느꼈던 완벽한 조화는 아끼던 대학 후배가 믿음직한 회사 동료와 잘 맞아 사귀게 된 것 같이 기분을 흐뭇하게 만든다.
나의 경험들 중 일반적인 음식 매칭과는 다른 몇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내 주변 일상의 음식들과 매칭을 해보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확신을 갖게 된 조합들이다.
일단, 탄수화물과 와인은 대부분 잘 어울린다. 특히 양념이나 내용물이 과하지 않은 밥, 빵, 떡은 와인 자체의 맛과 담백함이 어우러진다. 여기에 내용물이 받쳐주면 더욱 폭발적인 조합이 된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에 지방이 추가된 고기만두는 신맛의 와인(레드, 화이트 모두)과 천생연분이다. 마찬가지로 감자전이나 계란샌드위치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
족발과 순대는 거의 모든 레드와인 잘 어울린다. 스테이크 먹을 때 레드와인이 생각나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족발과 순대의 짝은 이탈리아 레드다. 우리집 식탁에 족발이나 순대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와인을 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불고기나 육전과 같은 상대적으로 라이트한 육류에는 산지오베제를, 삼겹살이나 꽃등심과 같은 헤비 지방에는 프리미티보나 네로 다볼라를 추천한다.
떡볶이, 비빔냉면, 물회, 두루치기 등등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여러 차례 와인을 매칭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매운맛과 신맛, 쓴맛은 어울리지 않는다. 맛의 관계를 몰랐던 나는 실패를 거듭했다. 대부분의 신맛이 강한 화이트, 레드와인과 탄닌감이 높은 레드와인은 맞지 않았다. 단맛이 매운맛과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발견한 것이 모스카토 다스티다. 단맛이 강하고 유질감(밀도, 바디)이 높은 모스카토일수록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린다. 단, 탄산감이 적은 모스카토일수록 좋다.
신맛과 신맛의 조화도 나쁘지 않다. 다만 신맛에 짠맛이 같이 있는 음식일수록 더 잘 어울린다. 오이지와 소아베 와인은 잘 어울린다. 식초와 간장으로 절인 장아찌들도 소아베와 같은 신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과의 조합이 아주 좋다.
한식이 생각보다 와인 매칭이 어려운 점은 분명하다. 매운 음식이 많고 여러 가지 재료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골라보면 의외로 잘 맞는 와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류가 많은 이탈리아 와인이 한식과의 매칭에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법칙은 없다. 레드와인 한잔에 맨 식빵 살짝 찍어 먹을 때 조차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 바로 정답이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