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쓰기
타이핑이 넘보기 힘든 수기만의 특징
아무리 활자가 전기를 타고 더 많이 생산된다고 해도, 종이에 쓰는 것만큼 깊은 느낌은 줄 수 없다. 종이에 잉크를 하나하나 새기는 가운데, 글자의 모양이나 글의 흐름을 신경 쓰면서 내 감정과 정신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 추상적인 영혼은 획을 더하는 손가락의 근육을 타고 외부 세계인 종이에 구체적으로 고정된다. 영혼을 활자로 고정시키는데 힘을 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획득한다. 반면, 타이핑은 획을 쓰는 과정이 생략돼 호흡이 짧다. 내 영혼을 가늠하고 반추해 볼 시간에 인색하다.
재봉틀로 수선하면 일률적인 패턴만 보일 테지만, 손수 바느질하면 그때그때의 역량이나 감정상태가 반영돼 땀과 땀 사이의 거리, 땀에 투여된 힘 들을 하나씩 살필 수 있다. 이처럼, 손으로 쓰는 글은 나를 돌아보는 수단으로 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다.
전기가 만능인 시대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손가락 근육과 잉크, 종이가 필요할 것 같다.
210801 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