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주현 Jul 23. 2021

경찰서를 털어라(1999, Blue streak) 리뷰

경계를 넘나드는 헤르메스의 화신, 주인공이 거침없는 이유(스포 주의)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gOArad



부담 없이 보기 좋은 영화다. 너무 웃기다고 해서 추천받았는데, 매 순간 웃음이 쏟아진다기 보단, 재미가 컸다.


소재는 확실히 웃기다. 영화는 로건(주인공)이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경찰이 눈치를 채고 로건을 쫓자, 그는 공사 중인 옆 건물로 피신한다. 경찰에 포위된 로건은 환기구에 다이아몬드를 숨기고 체포된다. 2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다이아몬드를 숨긴 장소로 돌아간다. 완공된 건물은 경찰서가 되어있었다. 낄낄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야기는 로건이 경찰로 위장 취업하면서 다이아몬드를 되찾기 위한 사투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웃음보단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새롭다거나, 탄탄한 완성도를 지니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로건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헤르메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을 수 없다고요? 날 봐요.

로건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디콘(배신자)이 다이아몬드를 훔쳐 멕시코 국경을 넘자, 그를 쫓던 FBI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 관할을 넘어선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건이 저 대사를 뱉은 것이다. 그는 곧장 경찰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 배신자에게 복수한다. 그에게 국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경계를 넘나드는 로건은 헤르메스와 같다. 헤르메스는 천상계, 인간계, 지하계를 넘나들며 소식을 전달하는 신이다. 세계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 든다. 이처럼, 로건은 선이라는 게 없다. 도둑질은 물론, 신분을 위조해 LA 지역 형사, 정부 부패 수사관(internal affairs) 심지어 멕시코 정보 요원까지 사칭한다.


애초에 선이라는 것이 없으니,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형사일 때는 영장 없이 수사하고, 용의자에게 폭력을 사용해 자백을 받는다. 상위 기구인 FBI가 수사 중임에도 사건 현장을 쳐들어가 증거를 수집한 뒤, FBI에게 욕설을 날린다. 그래서 정부의 권한을 초월한 멕시코 국경 밖까지 서슴없게 들어간다. 이 외에도, 환풍구로 들어가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여자화장실에 가거나 용의자를 폭력적으로 다루면 처벌받을 것이란 변호사의 경고에도 눈앞에서 용의자의 머리를 후려친다.(이 장면도 정말 웃겼다.)




로건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도둑'이기 때문이다. 정체성 자체가 법이 정한 질서를 무시하는 자다. 로건의 동료 형사들이 FBI의 명령 앞에 수사를 거두고, FBI가 멕시코 국경 앞에서 손가락만 빠는 모습과 대조된다. 그들은 법이 가진 질서, 권력에 복종하지만, 로건은 아랑곳 않는다.


알다시피, 헤르메스는 도둑의 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가 아폴론의 소떼를 훔쳐가 제우스에게 불려 간 일화도 있다. 도둑은 기존의 질서를 넘어 다닌다. 도둑은 문을 통해 드나들지 않고 창문이나 굴뚝으로 다닌다. 그래서 세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속성과 도둑질이라는 속성이 헤르메스라는 하나의 신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으로 통하기도 한다. 양을 돌려주라는 제우스의 명령에 헤르메스는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리라를 만들어 아폴론에게 주었다. 아폴론은 리라의 아름다운 소리에 반해 소떼와 교환한 셈 쳤다. 흥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 곳곳 로건이 흥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튤리(동료)에게는 석방(강도짓을 하다 로건에게 체포됐다.)과 돈으로 자신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입막음시키고, 디콘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돌려받는 교섭이 한몫했다.(이 장면도 정말 재밌는데, 멕시코 국경선 근처에서 잡히면 멕시코 교도소로 끌려가 엉덩이에 온갖 부리또가 들어갈 테니 미국 교도소로 가자고 설득한다. 한국 공식 번역은 '끔찍하다'로만 퉁친다.) 이 와중에 로건은 거짓말을 섞어 상대를 현혹시키는데, 재밌게도 헤르메스는 거짓말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만 보기엔 상징적인 요소가 풍부했다. 헤르메스처럼 도둑질하면서 되려 흥정하려들고 자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 다녔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경계 앞에서 제 의지가 종종 좌절된다면, 로건은 꼭 넘어가서 목적을 이룬다. 질질 끄는 모습이 없어 시원했다. 그런 모습이 활력 넘치기 때문일까. 로건의 동료들은 그의 정체를 눈치챘음에도, 그가 멕시코 국경을 넘어가 체포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연출한다. 로건은 도둑과 경찰 사이의 적대적 경계도 무너뜨린 것이다.

 

그래서 한국판 제목이 정말 아쉽다. <경찰서를 털어라>는 영화의  반쪽만 보여준다. 원 제목은 <Blue streak>이다.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번갯불', '전광석화'라는 뜻이다.(그래서 영화의 인트로에 파란 불빛이 번쩍이나 보다.) 그런데 어떤 블로그를 찾아보니, 'blue'가 경찰 제복을 의미한다고 한다.(https://m.blog.naver.com/waterboy222/222014424231)'streak'은 광선, 혹은 색깔의 스펙트럼 사이에 색과 색의 경계에 나타난 기다란 띠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를 종합하면 '푸른색(경찰) 가장자리에 나타난 이질적인 경계선'정도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경찰이 아닌 놈이 경찰 행세를 하는 로건의 모습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talk a blue streak'이라는 표현은 '수다를 떨다'라는 표현인데, 로건은 정말 말이 많은 캐릭터다. 원 제목인 <blue streak>은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좋은 메타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피드백이 피드백 같지 않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