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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현 Jul 29. 2021

영화 <황산벌, 2003> 리뷰 및 분석

한국 영화의 지향점 / 스포 주의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O2MDxW



<황산벌>에서 한국영화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참 여운이 깊은 영화였습니다.


자칫 감정만 줄줄 늘어놓을까 봐 몇 가지 키워드로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배경지식


<황산벌>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임에도, 전문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삼국시대를 공부하고 현장학습을 다녀옵니다. 문화적, 민족적 연속성(언어와 지역을 공유하는 까닭)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 의자왕, 김춘추가 설전을 벌이는 장면, <황산벌, 2003>


영화 초반부에 고구려, 백제, 신라, 당나라 끼리 설전을 하면서 '황산벌 전투'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사건들을 낱낱이 알 수는 없지만 각국이 오랜 시간 앙금을 품어왔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테네나 스파르타 등, 그리스 도시국가 간 갈등을 보듯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일어난 우리 조상들의 사건이므로 '공감'합니다.


저는 배경지식이 부족해 영화 도입부터 몰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황산벌>은 시작부터 강하게 끌려들었습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황산벌>은 한국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 언어 / 말투


<황산벌>은 저의 문화적 열등감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자존심을 세워주었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를 가진 점은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방언으로 분류하는 말투를 각 나라의 표준어로 설정한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도의 장치 없이도 백제와 신라의 진영을 뚜렷이 구분해주었습니다.


백제의 첩자가 신라의 군영으로 잠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첩자가 어설프게 신라 말을 구사하지만, 결국 백제 말(거시기, 시방)을 사용하면서 들키고 맙니다. 백제와 신라가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임에도, 말투의 차이로 서로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다는 점에서 우리말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라에 침입한 백제의 스파이(김승우, 신현준 까메오 출현), <황산벌, 2003>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세계 영화시장을 문화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말입니다. <황산벌>이 수출되어 첩보활동 장면이 보이면 자막은 어떻게 달아야 할까요? 자막으로 이해시켜도 재미는 반감될 것입니다. 몇몇 영화광들은 한국말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공부하기도 하겠지요.


외국 영화들(특히 영미권)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입니다. 가령 <킹스맨>에서 주인공 에그시가 하층민일 때 쓰는 발음과 계급이 상승하면서 쓰는 발음이 다르다는 사실은 리뷰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어벤저스>에서는 토르가 쓰는 말이 우리나라의 '하오 체'와 비슷해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는데,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즐길 수 없는 콘텐츠입니다. 그래서 따로 공부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황산벌>은 공부 없이도 풍부한 문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부연 없이 방언의 차이에서 오는 웃음을 한국영화 아니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동시에 씁쓸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어의 색은 다르지만 근본은 동일함에도 각 집단으로 구분되어 대립하는 모습이 현재 한반도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 영화를 보며 부러워했던 특징을 <황산벌>에서 확인하고 우리나라도 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한국영화에서 다루는 방언은 배우의 연기력 측정 수단에 불과하거나 '마초 이미지', '단순 희화 및 조롱'으로만 소비된다고 생각합니다.('누아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질적인 데서 오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려 하거나 중국 동포에게 편견(심부름 꾼, 살인 청부, 덜 떨어진 이미지)을 심어주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지역적 특색, 문화나 역사적 가치를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산벌>이 더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윤리적 기준으로 보면 말투와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영화의 설정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입견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윤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는 그것만으로 방대한 문제인 까닭에 따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 구성


<황산벌>은 전쟁이 가장 큰 흐름이지만, 소수의 영웅신화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1) 거룩한 사명 보단 어쩔 수 없는 정치상황이 두드러지고, 2) 이름이 남아 전설이 된 장수들이 점점 광기에 빠지며, 3)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 여성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부각됩니다. 기존 영화 구성을 비틀어 참신했다고 생각합니다


1) 정치상황

영화는 겉으로 보면 전쟁이 주를 이루지만, 등장인물의 관심은 전후처리에 있습니다. 전쟁을 치르기 전부터 정치를 신경 쓰는 것입니다. 백제는 7월 10일까지 버텨서 당나라와 협상을, 신라는 7월 10일까지 당나라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전쟁은 과정일 뿐, 그 자체에서 직접 얻는 것은 없습니다.


영화 초반, 연개소문은 "전쟁은 정통성 없는 것들이 정통성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통성을 명분으로 바꾸면 황산벌 전투입니다. 황산벌은 백성,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보이기보단(결과적으로 그러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극 중에서 김유신이 전쟁에서 이기고도 씁쓸함을 보이는 까닭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삼국의 왕이 모인 가운데, 중국은 사신이 참석, <황산벌, 2003>

(씁쓸함을 더하는 데는 정치상황이 '외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한반도에 거주했던 우리 조상, 민족들의 역사이지만 당나라는 이질적인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당의 황제는 등장조차 하지 않고 외교관의 입을 통해 그 뜻이 전달될 뿐입니다. 그 뜻에 삼국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삼국의 정치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2) 광기

'이름'은 정치밖에 남지 않은 황산벌 속에서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상징입니다. 백제는 계백의 퍼포먼스로 사기를 충전받은 상태입니다. 가족을 죽이면서 전쟁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신라는 병력 수가 많아도 쉽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김유신은 오랜 고민 끝에 화랑을 내보냅니다. 단신으로 백제의 진영으로 들어가 죽게 만드는 것이죠. 김유신의 조카인 반굴, 김품일의 아들인 관창이 차례로 죽어나가자, 신라군은 고무되어 사기가 상승합니다.(김유신의 명령으로 병사 두 명이 선전을 펼쳐 병사들의 백제군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화랑을 설득하는 방법이 '이름'입니다. 명예롭게 죽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면 천년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말을 반굴과 관창의 아버지가 합니다. 결국 둘은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만, 실상은 사기진작을 위한 개죽음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신라의 광기는 계백이 가족을 죽인 광기에 맞서기 위한 것입니다. 김유신은 "전쟁은 미친놈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을 할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3) 소외된 존재

미친 짓을 지적한 사람은 김유신만이 아닙니다. 이름도 나오지 않은 계백의 부인의 입을 통해 다시 진술됩니다. 계백의 부인은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라고 말합니다. 계백이 가족에게 자결을 권유하면서 '이름'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뒤집은 것입니다. 영화의 비극을 강조하고 역사의 위인으로 남은 인물에게 뼈아픈 말을 던진 존재는 여성입니다. 여성은 시대에서 배제된 인물입니다. 남성주의적 경향이 지금보다 강했고 이름이 남아도 남성만 남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계백의 칼을 막아서는 계백의 부인, <황산벌, 2003>

전쟁도, 정치도 남성이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황산벌의 광기도 남성이 초래한 것입니다. 이를 뼈 아프게 지적할 수 있는 인물은 남성 중심의 시스템에서 소외된 자일 것입니다. 김유신은 시스템 속 주연이기 때문에 자조하면서도 시스템이 정한 대로 따라갑니다. 하지만 계백의 부인은 시스템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순순히 죽지 않고 저항함으로써 죽습니다. 그래서 계백 가족의 죽음이 더 처절하게 다가오나 봅니다.


모든 남성이 시스템의 주역은 아닙니다. 정치와 전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는 민중도 있습니다. '거시기'는 민중의 대표를 상징합니다. 거시기는 극 중에서 '감탄사', '강조', '전쟁', '갑옷과 옷을 바느질하기', '죽음' 등 다양한 뜻을 품습니다. 특정한 의미가 정해지지 않아 모든 의미를 내포할 수 있습니다.


극 중 민중의 이름은 '거시기' 하나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영웅들만 이름을 가질 뿐입니다. 용감하게 싸워도 이름조차 남길 수 없는 소외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거시기'는 이름 없는 모든 민중들을 압축해서 제시합니다.

거시기와 어머니의 재회 ,<황산벌, 2003>

농사짓다 끌려온 '거시기'는 패배를 앞둔 상황에서 어머니를 걱정합니다. 농사일이 산 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인 민중들을 명분 세우기 위한 행위에 희생시키는 전쟁의 비극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거시기'의 모습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거시기가 어머니와 재회할 때 뭉클함이 느껴집니다. <황산벌>은 영웅들의 등장으로 시작해서 민중을 조명하며 막을 내립니다.




거대 사건을 다루면 종종 빠지는 경향이 하나 있습니다. 제작자도 그 스케일에 압도되어 우상, 환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전쟁은 특정 인물의 무용담으로 꾸며지고, 그들이 사건의 향방을 좌우하는 압도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황산벌>은 개인(특히 영웅)의 크기를 줄이고(이를 위한 장치로 '코미디'를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들은 정세에 속박될 수 없는 존재들이며, 오류(광기)에 빠지게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 안에서 소외된 존재의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영화를 최근 한국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나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 나가며


개인적인 취향이 쏙 들어맞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들뜰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으나 선호가 많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영화를 잘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미래를 보았다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점, 과한 점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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