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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현 Jul 20. 2021

피드백이 피드백 같지 않을 때

누군가는 '지적을 위한 지적'을 하고 있다 / 영혼 없는 주장을 경계하자

유독, 어떤 사람 앞에서는 의견을 말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조목조목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피드백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못 이야기했나?', '내 생각이 그렇게 아닌가?'

특정 인물에게 불편한 감정이 반복되면 '영혼 없는 주장'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은 의견 제시를 위해 '뜻'을 가지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하는 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주장'은 왜 하는 것일까요? 다음 글을 통해 그 이유와 사례를 살피고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알아봅시다.



영혼 없는 주장은 음소들의 뭉치일 뿐이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음소를 나열하는데 그친다. 그 주장이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더라도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음소 뭉치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반대하고자 하는 주장의 선호가 떨어지거나, 그 주장의 발화자를 싫어하는 경우다. 이는 탁한 영혼이 담긴 주장일지언정, 영혼 없는 주장은 아니다. 다른 하나가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그저 논리 기술을 구사하고자 반대하는 경우다.


어떤 주장이든 흠결은 존재한다. 그래서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다. 문제는 흠결을 지적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적하는 행위는 그 순간 상하관계를 형성한다. 흠결은 저열한 것이고 교정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력이 생긴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권력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지적할 때 성취되는 권력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흠결만 찾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반박하는 주장에 사상과 뜻이 담겨있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무게도 가지지 못한다.


단적인 대화로는 음소들의 나열을 알아챌 수 없다. 많이 대화해봐야 알 수 있다. 뜻과 사상은 고유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주제, 어떤 화제에서도 그 양감이 드러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 중 논리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흠결만 지적하는 행위는 하중이 실리지 않아 화제가 달라질 때 허공에 뜨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음소들 만이 존재를 가질 뿐, 곧장 흩어지고 만다. 달리 말하면, 사상은 말로 선언한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들 속에 천착해 겉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예시를 들어보자. 언론 동아리 활동 중, 기사의 야마(핵심 주제)를 플랑(현수막)에 써서 붙이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사장직을 맡고 있던 친구가 플랑에 학교의 도장을 받아 게시하자고 말했다. 해당 기사는 학칙의 일부가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 민주주의를 침해하여 헌법과 충돌하므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허가해줄 리 만무할뿐더러 역사적으로 플랑을 학교 도장받아 게시한 사례는 전무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반대하자, 친구는 도장 없이는 게시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절차적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며 때려치우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플랑이 무엇인지도 몰라 옆 동료에게 따로 물어봤다고 한다. 친구는 그저 '출판물을 붙이는데 허가를 받지 않으니 흠결이 있다.'에 초점을 두었을 뿐이다. 이전에도 대자보, 포스터 등을 게시할 때도 학교의 도장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친구다. 화제가 플랑으로 바뀌자, 영혼 없이 음소를 나열했을 뿐이다. 흠결만 찾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친구는 여러 사건이 중첩된 끝에 직을 사퇴하였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영혼 없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에 휩쓸릴 필요 없이, 때를 기다렸다가 영혼 없음이 드러난 그 순간 지적하면 하염없이 무너질 것이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저 역시 '지적을 위한 지적'을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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