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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신문 Jan 11. 2020

04. 몽당연필에서 융합을 배운다.

몽당의 가치는 결합에서 시작됐다.

[쌓는 아이] 집중
'스펙 쌓는 아이, 콘텐츠 쌓는 아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틱톡, 페이스북, 트위치, 구글, 아마존, MS, 그리고 퀴비까지..
세상 모든 플랫폼은 콘텐츠를 원하는데 언제까지 스펙만 쌓을 것인가?
몽당연필에서 융합을 배운다.


연필은 쓰고 지우고, 볼펜은 쓰고 가린다.


입학이 가까워오면 

새로 산 연필을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배치하는 설렘이 있었다. 필통 한 켠에는 지우개를 위한 보금자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뾰족하게 깎여 나란히 배치된 연필 심은 필통의 자존감을 드높이는 상징이었다. 출석 일수가 늘어났다 하더라도 필통에 담긴 연필의 심은  늘 뾰족하고, 말끔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키 순으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때는 연필로 필기하는 재미보다 기차모양 연필 깎기 구멍에 끼워 뾰족하게 연필 깎는 재미가 더 좋았을 때다. 더 깎고 싶어도 더 깎을 연필이 없으면, 기존에 깎았던 연필의 반대편 꼭지마저 깎아 깎는 재미를 더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더 이상 연필 깎기로 깎을 수 없을 때쯤 처음 각인된 연필의 디자인이 사라질 만큼 짧아질 때쯤 되어서야 연필의 생은 끝났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와 같은 노랫말이 있다.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감성적인 비유가 담겼다. 아이들에게 볼펜 대신 연필을 권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고,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연필에는 그러한 어른들의 기다림과 배려심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어른이 되면, 

연필 대신 볼펜을 주로 사용한다.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다. 쓰다가 틀리면 틀린 글자를 볼펜으로 진하게 써서 가리거나 테이프 형 화이트 지우개로 덮는다. 연필처럼 지워서 새로 시도하기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가리거나 덮어서 같은 위치에 다시 시도하는 식이다. 누구나 연필처럼 깨끗하게 지워서 새로 시도하고 싶다. 그런데 볼펜과 달리 연필은 수시로 깎아줘야 하고, 이동 중에 부러질 수 있고, 별도의 깎는 도구와 지우개까지 챙겨야 하고, 중요 부문에 눈에 띄게 마크하기도 어렵다. 볼펜의 편리함이 연필의 매력을 이기는 격이다.


그때는 

연필의 불편함을 개선한 샤프펜슬이란 용품도 있었다. 꼭지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 쓸 수 있을 만큼 노출된 심으로 편리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가느다란 샤프심을 한 통 구입 후 샤프펜슬 통에 미리 넣어두면 볼펜만큼이나 오랫동안 쓸 수 있었고, 연필처럼 언제든 지울 수도 있었다. 이후 샤프펜슬과 컬러 볼펜이 하나로 결합된 제품도 출시되었고, 연필 꼭지에 지우개가 달렸던 것처럼 볼펜 꼭지에 테이프 형 화이트 지우개가 결합된 제품까지 출시되었었다.


이처럼 

연필과 볼펜의 과거와 현재의 발전과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언제든 실수에 대비한 지우개가 가까이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컬러와 다양한 기능까지 제공하도록 상호 간에 결합 또는 융합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연필과 볼펜이 융합하면 가치가 높아진다.


필자는 우연히 접한 

몽당연필 사진에서 문득 퇴준생과 취준생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손에 쥐어지지 않을 만큼 짧아진 연필이 퇴준생의 모습이라 생각됐고, 겉은 멀쩡하지만 잉크가 소모되어 새로운 잉크를 충전해야 하는지 교체해야 하는지 새로운 볼펜을 구입해야 하는지 미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인 취준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퇴준생의 경우, 깎이고 깎여서 짧아질 대로 짧아진 연필이 사회에서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너무 짧아 연필의 반대편 머리꼭지 부분마저도 깎을 수가 없다. 아무리 뾰족한 연필 심을 가졌더라도 짧아진 연필에 더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모나미 볼펜의 몸통은 몽당연필의 꼭지 부분을 맞춘 듯 끼워 넣기에 충분했다. 잉크가 모두 소모된 볼펜과 짧아진 연필의 융합으로 새로운 관심과 가능성도 생겨났다. 융합으로 인한 가능성은 그런 것이다. 신구 세대의 조합 혹은 상생 혹은 융합의 사례를 몽당연필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기회의 가능성을 4차 산업혁명에서도 찾았으면 한다.

이와 같은 

기회의 가능성을 4차 산업혁명에서도 찾았으면 한다. 수기로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작성했던 시대의 금융과 전화번호만으로도 송금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전화번호만으로 또 다른 무엇을 이동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트럭에 실린 화물에 새로운 무엇이 실리게 되고, 어떻게 이동하고, 무엇으로 이동하게 되는지도 깊이 고민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트럭에 엔진 대신 배터리가 장착되고, 운전자 대신 라이다 자율주행장치가 장착되고, 도로 대신 하늘로 운송하는 과거의 상상을 조금씩 현실에서 접하게 되면서 그 가능성은 더더욱 무궁해졌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만 하더라도 택시업계에 강력한 라이벌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면서도 반대하는 대화 내용마저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모순이 지속되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가 언급한 무궁한 가능성이 멀리 있는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다. 연필과 볼펜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거나 자신만의 지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많아졌다. 실수에 대비한 지우개를 굳이 챙겨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연필과 모나미는 스마트펜으로 대체되었고, 더 이상 몽당으로서의 과거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면, 

유에서 무를 창조할 수도 있고, 유와 무를 동시에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창조만큼이나 몽당의 결합 역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일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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