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 얽힌 인연
# 수면빚 탕감자, 진원
인간이 보기에는 별다를 것 없는 하늘, 사람들 사이사이 벌어진 간격, 아무것도 자리 잡지 않은 비어 있는 공간.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제각각의 틈이 바로 특별한 이들의 의사소통 공간이다. 할당 업무부터 시답잖은 농담까지 색깔도 크기도 다양하게 둥둥 떠다니는 글자를, 진원이 보고 있다.
진원은 특별한 존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수면빚을 탕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진원과 같은 존재를 탕감자라고 불렀다.
현대인은 100년 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매일 밤 1시간 30분가량을 덜 잔다. 과도한 업무와 불규칙한 일상으로 잠을 설치다 기어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건 이제 인간에겐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이다.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인간의 수면빚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건강 악화, 업무 능률 저하 같은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사회적인 범죄 발생까지. 수면빚을 탕감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질 좋은 잠을 충분히 자면 그뿐. 하지만 인간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수면빚을 계속해서 쌓아왔다, 스스로 탕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이들, 수면빚 탕감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진원이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서류철을 펼치자 앳된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녀의 표정이 진원의 얼굴에 고스란히 옮겨진다. 너무 희미해서 곧 사라질 것 같은 소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진원이 실패, 두 글자를 적어 넣는다. 그러자 종이에 박혀있던 소녀의 얼굴이 스며들듯 사라진다. 인간의 세계에서, 소녀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소녀는 오랜 시간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였다. 이제 성년이 되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앳됐다. 친아버지로부터, 삼촌으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소녀는 성년이 되어서야 신고했고,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아픔을 겪어야 했다. 진원이 옆에서 그 과정을 함께 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틴 소녀의 끈질김 덕분에 두 사람은 결국 구속됐다. 미소를 되찾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진원은 안심했다. 하지만 수면빚이 거의 다 탕감되어 가던 시점에 소녀는 갑자기 생을 마감했다. 소녀가 일기처럼 남긴 마지막 글귀가 오랜 시간 진원을 괴롭혔다.
‘그 사람들은 곧,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나는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들과 내가 함께일 순 없으니.’
탕감자가 인간과 영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이들 역시 한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것을 불쌍히 여긴 신의 배려라면 배려랄까. 진원도 그렇게 탕감자가 되었다.
이들 탕감자는 저마다 다양한 직업으로 인간 세계에 머물렀다. 대놓고 수면 클리닉을 운영하는 이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노래, 먹을거리로 인간의 잠을 유도해 수면빚을 탕감하는 이들도 있었다. 진원은 본분도 잊고 정처 없이 떠돌 만큼 일상의 소소한 소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수면을 유도하는 방법은 소리였다. 진원은 의뢰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주변 소리를 담았다. 본인조차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런 인간의 말을 어찌 믿으랴. 때론 주변 소리가 의뢰자의 말보다 더 신뢰가 되기도 했다.
간혹 인간이 수면빚 탕감을 거부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인간은 물론 탕감자까지 인간의 세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소녀처럼 인간이 갑자기 생을 포기하면 탕감자에게 벌이 주어진다. 다음 차례에는 좀 더 버거운 상대, 그러니까 골칫덩이 인간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수면빚 탕감을 동시에 담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24시간 밀착이 필요한 위급 상황을 제외하곤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워낙 사람들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 진원은 따로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간이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안에 담겨 있을 테니까. 인간은 고등동물임이 확실했다.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면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말이 상담이지, 진원은 그저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오류라도 난 건지, 하늘에 공지 사항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시끄러워서 눈을 감고 있던 진원이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설마, 또….’
하루에 몇 통이고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내 걸린 간판의 이름 탓이리라. <조용히 잠들다> 진정으로 인간들이 평온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인데, 인간들은 죽음을 먼저 떠올렸다. 자살하고 싶다는 전화는 물론 가끔 자살 조장 모임인 줄 오해한 언론사의 취재 요청을 받기도 했다. 방금 걸려 온 전화는 장례 업체인 줄 알고 연락했단다. 검색 한 번이면 줄줄이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시대에 어쩌다 자신에게 연락하게 되었는지, 진원은 그게 더 궁금했다.
왜 인간들은 잠을 두고 죽음을 떠올릴까. 우연히 내다본 창밖에 한자 한자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령이다. 당사자에게만 보이기 때문에 혼선은 없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려는 찰나, 이름 글자 주변이 어둡게 변한다. 그 사람에게 곧 위기가 닥친다는 의미였다.
# 지긋지긋한 수은의 수면장애
두 사람의 헉헉 소리가 엇박자로 묘하게 장단을 맞춘다.
“아직 두 군데 더 남았거든? 뭐 이리 꼭대기에 있는 거야! 젠장!”
50대를 넘겼지만, 40대 중반도 안 돼 보이는 삼촌 현노의 손에 이끌려, 수은은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가고 있다. 내년이면 마흔이지만, 철도 안 들고 꾸미지도 않은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30대 초반쯤으로 보곤 했다. 질질 끌려다니는 이 상황은 월례 행사다.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삼촌이지만, 월례 행사만큼은 절대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현노가 수년째 – 사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 같은 곳을 또 갔을지도 모르겠다. – 수은을 데리고 방방곡곡을 헤매는 이유는 단 하나, 수은을 재우기 위해서다.
“이런다고 잘 수 있는 거였으면 수면장애 따위는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다고!”
수은이 매번 똑같이 외쳤지만, 현노에겐 먹히지 않았다.
수은은 스토리작가다. 이야기를 만드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녀가 만든 이야기는 영화로, 만화로, 드라마로, 뮤지컬로,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했다. 때로는 의뢰에 맞춰 이야기를 잡아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은 그냥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세상 모든 게 그녀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녀의 상상 속에서 움직였다.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그놈의 수면장애만 없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했으리라.
현노에게 대드는 게 일상인 수은이지만, 이 월례 행사만큼은 반항하지 않고 기꺼이 따랐다. 현노도 수은 못지않게 답답했을 것이다. 그 어떤 치료로도 나을 수 없었으니까. 심지어 나아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수은의 수면장애는 시간이 갈수록 만성화되어 더욱 강력해졌다. 다만 현시점의 가장 큰 문제는, 밤을 새워 글을 쓰고는 바로 끌려 나와 산을 타고 있다는 거였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 때문에 움직이기조차 곤란한 상태인데 말이다. 특히 눈꺼풀이 그랬다. 잠들더라도 몇 분 지나지 않아 깨어날 게 뻔하지만 제발, 잠깐이라도 좀 자게 해 주면 안 된단 말인가.
“악, 아악, 악! 악!”
수은의 외마디 비명이 하늘 끝까지 솟아오를 기세다. 잠이 온대서 별짓을 다 해봤지만, 살다 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온몸을 마찰시켜 혈액이 잘 돌면 피로해지고, 그러면 혈액 속에 피로소가 생겨서 잠이 온단다. 찰싹찰싹 발바닥을 두들겨 맞고 있자니 욕이 절로 나오려는데, 수은의 입이 가차 없이 현노의 손에 막혔다.
‘삼촌은 과연 정상인 걸까. 이런 방법으로 재운다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나 이걸로 잠을 재운다고 하는 사람이나… 설마 이러다 맞아 죽는 건 아니겠지?’
입 밖으로 비명조차 꺼낼 수 없는 수은이 인상을 찌푸린 채 현노를 노려본다. 고통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 수은이 앞니 보호 차원에서 현노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나 안 잘래! 안 잘 거야! 안 자면 좀 어때? 금방 죽어? 차라리 죽을래! 나 좀 내버려둬!”
수은의 외침이 온 산을 뒤흔들자, 새들이 그 소리에 놀란 듯 푸드덕 날아오른다.
# 이설의 짐, 엄마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지친 듯 멍한 상태로 서랍장에 기대앉아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방안은 고요하다. 여자가 기대앉은 서랍장이 칸마다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애쓴 듯, 서랍장 주변에만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아줌마, 조금만 더 힘내.”
희미하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축 늘어졌던 여자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때마침 출근 준비하던 이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멈춰 선다.
‘아무리 엄마라지만,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엄마라서 더 이해가 안 된다고!’
내뱉지 못한 그녀의 말이 꿀꺽 삼킨 침과 함께 넘어간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아온 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 바람에 엄마는 위세척을 여러 번 했다. 이설은 그 뒤부터 약을 숨겼다.
‘약이 무슨 마약도 아니고. 약 먹으면 반송장처럼 자기밖에 더 해?’
이설의 마음이 눈빛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녀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간절하다. 깨어있는 시간이 엄마에겐 고통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보는 딸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이설은 늘 그게 궁금했다. 엄마를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딸 노릇만 있고 엄마 노릇은 없는 건지. 엄마를 아프게 짓누르는 마음에 정말 자신의 자리는 없는 건지 지겹도록 묻고 또 물었다. 결국 이설의 진심은 오늘도 마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설이 자물쇠를 열고 약을 꺼낸다. 목적을 달성한 엄마가 얌전히 기다린다. 이설이 약봉지 찢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엄마를 대신해 약봉지를 뜯어 알약만 내민다. 입을 벌려 약을 받아먹은 엄마는 다시 잠을 청한다. 엄마가 잠든 걸 확인한 후에야 이설이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성수대교를 건넌다. 저 멀리 탑이 하나 보인다. 잘 보이지도 않는 탑을 한참 노려보던 이설이 고개를 돌린다.
# 잠을 갈취하는 존재, 태하
시간이 과거에서 멈춰버린 듯 집안이 고요하다. 오래된 가구, 오래된 신발, 오래된 옷들. 그때 삐걱, 정적을 깨고 문이 열린다. 그 바람에 방문 옆에 있던 수납장이 흔들린다. 여섯 살쯤 되려나, 이설의 어린 시절 사진이 담긴 빛바랜 액자도 덩달아 흔들린다. 열린 엄마의 방문 틈으로 삐죽, 남자가 얼굴만 내밀고 주변 정황을 살핀다. 태하다.
“아줌마, 고마워.”
하지만 그 말을 들어야 할 대상은 없다. 태하가 나타나자, 이설의 엄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건강한 잠과 그렇지 않은 잠. 인간의 건강한 잠은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잠은 달랐다. 현실을 벗어나 도피처로 향하듯 청한 잠이라서일까, 건강하지 않은 잠은 틈이 많았다. 이설 모(母)의 잠은 건강하지 않은 잠이었다. 태하와 같은 존재들은 잠에 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을 재우고 그 시간을 갈취했다. 그래서 이들을 갈취라자 불렀다. 그런데 이들이 갈취하는 시간만큼 인간의 수명이 줄어들었다. 그게 문제였다.
태하가 이설의 엄마를 만난 건 몇 달 전이다. 그때 태하는 눈뜨고 세상을 보는 게 싫다며 틈만 나면 잠을 청하는 할머니의 잠을 갈취하고 있었다. 태하는 어디까지나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잠을 길게 재우는 게 불가능해졌다. 할머니는 태하가 나타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두, 세 시간에 한 번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병원은 갈취자가 들키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인제 그만 할머니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서둘러 다음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병원을 어슬렁거리던 태하가 혼자 다른 세계에 빠져있는 눈빛을 발견했다. 그가 딱 좋아하는 눈빛이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탕감자도 포기한 인생이거나 아니면 누락되어 탕감자가 배정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리라. 태하는 조심스럽게 중년의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만의 독특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는 태하가 자신의 먹잇감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태하는 이설의 엄마를 만났다.
태하와 같은 갈취자는 탕감자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인간이 죽을 때까지 시간을 갈취할 수 있었다. 이들은 반경 1km 내에서 서로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데, 태하와 같은 갈취자 입장에선 피하는 게 상책이다. 탕감자에게 잡히는 순간 갈취자의 삶은 끝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탕감자가 빛과 같은 존재라면, 갈취자는 어둠과도 같은 존재였다. 인간도 아닌데 인간 세계에 머물 건 무엇이며, 수면빚 탕감자로 존재하는 것도 아닌 인간의 잠을 갈취하는 존재로, 늘 쫓기듯 이 세계에 머무는 이유가 뭘까. 태하는 먹잇감을 물색하는 중에도 고뇌에 빠지곤 했다. 갈취자 노릇을 끝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신에게도 다 뜻이 있으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휘파람을 불며 외출을 준비하는 태하. 아무래도 이번엔 상대를 제대로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태하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닌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 이곳이 그의 안식처다. 한참을 둘러보다 이설의 사진이 담긴 액자 옆에 마른 꽃 하나를 올려놓는다. 갈취자는 인간의 영역 어딘가 한구석에 자신의 표식을 남겼다.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갈취자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표식의 수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