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관계의 변화 Ⅱ
# 뜻하지 않은 기회
수은은 겁이 나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듯 집 밖에서 빙글빙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무심히 하늘을 올려 보다가도 혹시나 진원에게 연락이 올까 싶어, 이따금 전화기를 확인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수은이 낭만 가득한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찰칵, 수은의 모습이 현노에게 전송됐다. 그런데 수은을 지켜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의 그림자는 그녀를 주시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관없다는 듯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망설이는 사이 덥석, 가까이 다가간 남자가 수은의 어깨를 잡았다. 수은이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뭐 하시나?”
익숙한 목소리에 수은이 고개를 들었다. 태하였다. 겨우 두 번째 본 건데 이토록 반갑다니. 태하가 피식 웃자, 수은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 무심히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났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집이 이 근처예요. 지금은 지나가는 길?”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자, 수은이 다급하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저, 저기가… 나… 내가 사는 집이에요.”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어서 들어가요.”
이렇게 그냥 간다고? 수은이 지나치려는 태하를 잡았다. 두 번밖에 본 적 없는 남자야! 마음속에서 외쳤지만, 그녀는 사실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더 무서웠다. 자신을 덥석 잡아놓고 다른 생각에 빠진 수은을 태하가 왜 잡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태하의 시선을 알아챈 수은이 당황해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뱉었다.
“그때 하던 얘기마저 하고 싶어서요. 그게. 내가 만든 캐릭터가 당신이랑 닮았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태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못 이기는 척 수은을 따라갔다. 이번에는 다정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태하와 수은, 두 사람의 모습이 찰칵, 현노에게 전송됐다.
집주인이 바뀐 듯했다. 수은은 뭔가 가져다주긴 해야 하는데 뭘 가져다줄지 몰라 이리저리 서성였고, 태하는 이곳저곳 자신의 집인 양 돌아다녔다. 태하는 구경하는 척하며 집안에 이질감 가득한 물건이 없는지부터 살폈다. 습관처럼 그가 하는 행동이었다. 자신과 같은 갈취자가 머물 수도 있으니까.
태하가 멈춰 서서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수은이 다가와 설명했다.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 이건 20년도 더 전의 나예요.”
내내 혼자였는데, 방금 혼자가 된 듯 수은에게 쓸쓸함이 밀려왔다. 이 분위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럽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진원이었다. 수은은 세상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던 수은이 슬쩍 태하를 쳐다봤다. 태하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통화하라고 손짓하자, 수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통화를 이어갔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든 채 가방을 뒤적이던 수은이 불편했는지, 탁자 위에 전화기를 내려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수은이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수은이 꺼낸 게 뭔지 설명하는 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USB에 음악을 넣어뒀어요. 그거 들으면 잠이 잘 올 거예요. 무서워도 밖에 나갈 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그 음악 틀어놓고 자요. 내가 옆에서 틀어주려고 했던 건데 워낙 상황이 급해서… 어! 뚜뚜”
상황이 다시 나쁘진 듯 전화가 끊겼다. 오빠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수은이 끊어진 전화와 USB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태하가 수은의 관심을 끌려는 듯 작업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하가 벽에 가득 붙어있는 메모를 살피자, 수은은 금세 진원을 잊고 태하 곁으로 향했다.
“근데 이거 외부 유출 금진데…”
“걱정하지 말아요.”
수은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자, 태하가 중얼거리며 정성스럽게 메모를 읽어나갔다.
“어, 근데 한 남자의 이야기만 진척됐나 봐요? 잠이 들어야 만나는 남자는 아직 아무것도 없네?”
태하가 뿌듯하게 자신의 메모를 바라보고 있는 수은을 쳐다보다 들릴 듯 말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나랑 너무 닮았는 걸?
태하는 자신을 조향사라고 소개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아주 가끔이지만, 들르는 작업실도 있었다. 그곳에서 직접 향을 만들기도 했다. 목적은 단 한 가지, 인간을 쉽게 재우기 위함이었다. 수은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향을 만든다고요?”
“요즘은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워낙 많잖아요.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수면을 유도하는 향을 연구 중이랄까.”
그래서 수면장애 사례를 수집 중이라며, 태하는 수은이게 잠버릇, 수면 상태 등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인간의 잠을 갈취하는 존재로서의 질문이기도 했지만, 태하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수은에게 관심이 생겨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이미 수은의 눈에 태하는 잠을 자야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 속 그 남자였다.
“태하 씨 얘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확 드는 생각인데요… 혹시, 내 이야기의 모델이 되는 건 어떨지?”
“좋아요.”
수은이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에 태하가 망설임 없이 즉답했다. 그녀를 어떻게 곁에 둘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태하에겐 잘된 일이었다.
# 꼬리잡기
진원은 이설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공지 메시지부터 띄웠다. ‘주의 요망, OO동 갈취자 출몰’. 이설의 엄마가 집에 없는 걸 확인한 진원이 집 밖으로 나서며 자신을 따라 나오려는 이설을 저지했다.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그냥 집에 있어요.”
진원은 차분하게 집 주변부터 탐색했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시 이설의 집으로 돌아온 진원이 이번엔 꼼꼼하게 갈취자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안 곳곳에 놓인 마른 꽃들을 발견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드나든 적이 있나요?”
“일주일에 두어 번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이 오시긴 해요.”
“꽃은 어느 분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꽃이요? 우리 집엔 꽃 좋아하는 사람 없는데? 근데 어디 꽃이 있어요?”
분명 갈취자가 남겨둔 흔적이었다.
갈취자가 인간의 잠을 갈취하는 사이, 인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갈취자가 인간 대신 삶을 즐기는 사이, 인간이 어디에 머무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갈취자가 인간 대신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들이 남겨둔 물건도 많아졌다. 그들이 남겨둔 물건은 갈취자의 특성에 따라 달랐다.
안타깝게도 이설의 엄마는 갈취자가 좋아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별 소득 없이 날이 밝았다. 진원은 이설이 출근하고 난 뒤에도 집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갈취자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갈취자는 꼭 인간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만 인간이 다시 나타나 삶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갈취자 역시 계속 잠을 갈취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엔 인간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아야만 갈취 대상을 바꿀 수 있었다.
수은과 헤어져 돌아오던 태하가 이설의 집 주변을 서성이는 진원을 발견했다.
‘역시 그 여자가 답이네. 바로 들키잖아?’
진원이 갈취자의 자취를 느끼고 돌아서는데, 태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해야 탕감자를 유인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던 태하가 수은을 떠올렸다. 태하는 서둘러 다시 수은의 집으로 향했다.
“어쩐 일이에요?”
수은은 다시 나타난 태하가 어쩐지 반가웠다.
“아, 두고 간 게 있어서요.”
태하의 시선이 무언가를 찾다가 발견한 듯, 한 곳에 멈췄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수은의 모습을 발견한 그가 얼른 부탁할 거리를 생각해 냈다.
“아, 저기 나 시원한 물 한 잔만 줄래요?”
태하의 부탁에 수은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마침, 수은을 따돌려야 했는데… 태하가 피식 웃더니 수은의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진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USB를 잃어버렸어요!’ 수은이 물을 건네자, 태하가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그는 수은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와의 만남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돼요. 알죠? 그래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또 불쑥 찾아올 거니까 기다려요!”
“언제?”
도대체 다들 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데 쾅쾅쾅 누군가 문이 부서질 듯 두드렸다. 놀란 수은이 그만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더 놀란 진원이 전화를 걸었다.
“나예요, 문 열어요.”
전화 먼저 하면 될 것을… 자신이 소리에 유독 민감한 걸 알면서 이런 진원이 수은은 못마땅했다. 진원은 숨을 헐떡이며 수은의 눈빛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태부터 살폈다. 그녀의 몸에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USB는 어딨 어요?”
“어딨긴요, 내가 꺼내서 가방 옆에 뒀는데…”
탁자 위 가방을 치웠지만 USB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USB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진원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함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능력이 남발되지 않듯, 목숨이 하나이듯, 이것 또한 인간에겐 단 하나뿐이었다. 진원에 이어 수은의 얼굴까지 땀범벅되도록 두 사람이 온 집안을 다 뒤지고서야 마침내 USB를 발견했다. 그제야 진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태하는 이설의 집에 들어가 집안 곳곳을 살폈다. 진원 외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곳곳에 자리 잡았던 마른풀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태하가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잘 있어, 아줌마. 그동안 고마웠어.”
탕감자가 눈치챈 이상 더 머물 수 없었다. 더 있어 봤자,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도착한 이설이 엄마를 발견하고 오열했다. 이설의 엄마는 딸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눈은 한층 더 초점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설이 눈물 범벅된 얼굴을 쓱 닦더니 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갈게요.”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군지 수은도 알 수 있었다. 엄마를 찾았다는 이설의 전화에 안도의 미소를 짓던 진원이 수은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곧 해가 지고 밤이 될 것이다. ‘이 여자를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진원이 한 손에는 USB, 한 손에는 수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얼결에 이설의 집에 끌려간 수은 역시 어리둥절했다. 저 여자는 왜 달고 왔냐는 듯 수은을 바라보던 이설이 진원을 엄마 방으로 데려갔다. 방문이 열리자, 엄마가 얼굴을 찡그리고 이설을 바라봤다.
“엄마, 약 줄게, 약!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약 먹을 시간이네? 잠깐만 기다려.”
이설이 방문을 열어둔 채 물을 가지러 갔고, 그 사이 엄마의 시선은 무심하게 진원으로 옮겨졌다가 수은에게로 향했다.
“엄마, 내가 약 꺼내 줄게.”
서랍의 자물쇠를 풀어 약을 꺼내든 이설이 덜덜 떠는 엄마를 발견했다. 놀란 이설이 다가가자, 엄마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허우적거리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이설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놀란 수은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엄마!”
이설 엄마의 반응이 점점 격해졌다. 사시나무 떨듯 떨다가 도망갈 곳도 없는데 뒤로 계속 자신의 몸을 밀어붙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엄마의 반응에 놀란 이설이 수은의 손을 잡아채더니 집 밖으로 내쫓고 현관문을 닫았다. 이설은 본능처럼 엄마가 발작하는 이유가 수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온 진원이 수은을 가만히 안아줬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진원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순간의 아픔이 모두의 고통을 없애는 실마리가 되길 그는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