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수면빚 / 9화

9. 혼란

by 박선향

# 태하의 혼란



자신이 자장가를 불러 수은을 재웠으면서 그녀가 사라지자 태하는 화가 난 산짐승이 포효하듯 괴성을 질러댔다. 이제 자신은 수은의 잠을 갈취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갈취자라 해도 그녀에게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고야 말았다. 어느덧 수은을 향한 태하의 마음은 이렇게 변해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평소라면 이제부터 세상을 즐기러 집 밖을 나설 것이다. 가장 기쁜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랄까,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시 태어난 환생과도 같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번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잖아!”


하지만 태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의 잠을 갈취한 게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인간 세계에 버려지듯 방치되었고, 자신과 같은 존재들에 치이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인간의 잠을 이렇게 탐하는 거라고, 동네 불량배처럼 떠돌며 숙덕거리는 갈취자들의 말을 엿들었다. 그들은 들으라는 듯 더 크게 떠들기도 했다. 그게 그들의 교육 방식 같았다. 처음엔 인간의 잠을 갈취하다 실수로 다른 인간에게 들키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한참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부딪쳐가며 태하는 인간의 잠을 갈취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무리 길게 머물러도 사흘 이상 연속으로 인간이 잠든 시간을 갈취할 수는 없었다. 탕감자들에게 들키면 자취를 감추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면 그만이었다. 그는 싸울 것도 지킬 것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녀는 달랐다. 괴로워하며 인간을 지켜본 적은 있어도 나서서 도와준 적은 없었다. 근데 물을 무서워하고 다리를 무서워하는 수은은 어쩐지 안쓰러웠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잠을 갈취하면서까지 그녀의 트라우마를 해결해 줄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왜 그랬을까.


처음엔 그녀가 자신의 방패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건지, 아니 그녀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자신과 함께 있으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지 궁금했다.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건지. 풀지 못한 마지막 문제처럼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는 틈만 나면 인간의 잠에 관한 공부를 했다. 서점과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읽었다. 의학적인 것부터 얼토당토않은 민간요법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이런 지식 때문에 잠 못 드는 인간을 만난 적도 있었다. 태하를 무슨 수면치료사쯤으로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그녀도 그러던 중 서점에서 만났다.


근데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건지, 곧 진원이 들이닥칠 게 뻔했다. 인간의 첫 수면 갈취는 길게 할 수 없었다. 점점 늘려가는 게 이들의 습성이었다. 잠을 갈취당한 사이 어디론가 사라진 경험의 달콤함을 인간이 알게 해 잠들고 싶게 만들었다. 태하는 인간들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좋은 향기를 풍기며, 혼자 있게 만든 후 자장가를 불러 깊게 재웠다. 자신이 인간의 시간을 갈취하는 건 인간에게 평온을 준 대가라고 생각했다.


태하는 수은의 집을 찬찬히 살폈다. 평소 수은과 함께여서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곳까지. 둘러보는 내내 수은이 옆에서 조잘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품 속 인물을 기록해 둔 벽면 앞에 섰다. 수은의 작품 속에는 두 남자가 등장했다. 깨어있을 때 만날 수 있는 남자와 잠이 들어야만 만날 수 있는 남자. 주변 사람을 모델로 썼다고 했으니까 탕감자가 바로 깨어있을 때 만나는 남자고, 자신이 잠이 들어야만 만나는 남자일 것이다.


수은의 메모가 가득했다.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당신은 언제 나타나는 건가요? 어디서? 아니 어디 머물고 있나요? 몇 살인가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그러고 보니 수은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녀가 인물 설정하기에 좋을법한 조건들을 꾸며 얘기해 준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가끔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의심할 법도 한데 그녀는 묻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녀에게 이 세상은 이야기의 배경일뿐이니까.


‘이제 다시는 그녀와 함께 일 수 없다니, 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자꾸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픈 현실이 그의 마음을 후볐다. 그녀의 이야기 속 남자는 잠이 들면 만날 수 있었지만 태하는 이제 영영 수은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야기 속 남자가 태하는 너무 부러웠다.


태하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수은의 작업실 책상 앞에 섰다. 그리고 연필을 꺼내 끄적였다, 그녀가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가 남긴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남겼다.


진원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미련이 남은 태하는 집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어디에 남길까. 그녀의 눈에만 띄었으면… 그녀가 많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이로써 태하는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마약 같은 존재,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가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 수은의 혼란



진원은 수은이 갈 만한 곳은 다 둘러봤다. 그는 진작부터 그녀의 동선을 다 꿰고 있었다. 더 이상 가볼 만한 곳이 없자, 진원은 결국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과 점점 가까워지자, 그 갈취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진원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분명 갈취자는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 존재가 태하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제발 아니길 바랐다.


삑삑 삑삑. 진원이 비번을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건 시계추 소리뿐이었다. 세상에 오직 단 한 가지 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마음을 비우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은일 가능성이 켰지만, 혹시 모르기에 진원은 조심스럽게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갔다. 제발 수은이길…


수은은 가만히 누워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 미동 없이 집안 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잠을 푹 잔 것처럼, 모처럼 개운했다. 근데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억하지 마. 기억할 필요 없는 일이야.”


어쩐지 이 말은 어기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잠에서 깼음에도 어쩐 일인지 몸이 잘 움직여지질 않았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닌데 왜 이러는 건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데, 눈앞에 진원이 보였다. 꽤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구나. 근데 그녀는 조금 전 목소리가 말해준 것처럼 어쩐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진원을 빤히 바라보던 수은이 태하가 떠오른 듯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두리번거렸다. 진원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 사람 없어요.”


허탈한 듯 수은을 등지고 돌아선 진원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제 못 만나요…”


아주 작게, 수은이 들을 수 없게.



진원이 말없이 식사를 준비했다. 기지개를 켠 수은이 배고픈 강아지처럼 졸졸 진원을 따라다니며 그가 밥 차리는 걸 구경했다.


“아주 어릴 적, 바로 그 자리에서 엄마가 당신처럼 밥을 차려줬어요.”


뜬금없는 기억에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때 주방에서 나던 소리, 뒤이어 아빠 소리, 오빠 소리까지 점점 다양한 소리가 수은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어쩔 도리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진원은 그런 수은을 가만히 안아줬다. 오빠의 품에 안기면 이런 기분일까.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울면 오빠는 지금처럼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곤 했다.


“일단 밥부터 먹어요.”


아무 말 없이 밥 먹는 수은을 바라보던 진원이 생각에 잠겼다. ‘태하는 수은을 어쩔 생각일까.’ 진원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또 하나, 왜 수은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걸까. 정말 이 상황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가 묻는다면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모처럼 잠을 잔 것 같기는 한데, 수은은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상황이… 지난밤 일을 기억하려 애쓰면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면 진원을 만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설도 그때쯤 만났다. 그녀의 엄마는 왜 자신만 보면 발작을 일으켰을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음에도 자신은 무엇엔가 홀린 듯 그냥 다 넘겨버렸다. 그것부터가 그녀답지 않은 거였다. 결국 먹은 게 탈이 났다. 수은은 먹은 걸 남김없이 다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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