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수면빚 / 13화

13. 제자리

by 박선향

# 돌아가자



또다시 이곳에 오다니… 태하의 눈앞에 수은의 집 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수은이 자신을 부르지 않길 바랐다. 아니 불러도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다시 인간 세상을 마주하면 자신이 어떻게 폭주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고 싶어 사진 앞에 섰다. 가만히 바라보던 태하의 표정이 문득 뭔갈 깨달았다는 듯 굳어졌다.


‘이미 세 번을 다 채워버렸는데, 자신이 이렇게 또 나타나면…’


태하가 갑자기 서둘렀다. 자신이 마무리를 지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흔적을 치웠어야 했는데,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은 자신을 자책했다.


집 안 곳곳에 남아있는 마른 꽃잎을 치우던 태하가 수은이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 수은의 모습이 낯설었다.


“보고 싶….”


그 말조차 함부로 뱉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띠링, 수은의 새 연재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서둘러야 하는 걸 잘 알지만 마지막으로 그녀의 글을 읽고 싶었다. 댓글이 달리는지 알람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 여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사라져야 할 것은 수은이 아니라 태하, 자신이었다.



태하에게 수은은 신기한 방패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저 이용하면 그뿐인 인간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를 향한 마음이라는 게 생겼다. 진실을 알게 된 후로는 미안함과 원망이 공존했다. 그녀의 인생을 자신이 망쳐버린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도 망가졌기에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원망의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데 원망스러워서, 그런 원망의 마음을 어디고 꺼내 놓을 수 없어서,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죄 값을 치러야 한다면 그것은 태하 자신이었다. 그러니 수은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했다. 이 정도면 아름다운 안녕이라니! 어떻게 해야 할까!


태하는 곧장 집을 빠져나와 진원에게 향했다. 서둘러야 했다. 수은의 집을 말끔하게 정리한 탓에 그에게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진원은 태하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 수은이 또 사라졌다는 뜻이며, 이제 그가 수은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근데 태하가 건넨 말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여자가 아무래도 죽으려나 봐!”

“뭐라고?”


이래저래 불안해 보이긴 해도 수은이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강했고, 두렵다고 망설일 사람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그런데 생을 끝내려 한다니, 이 무슨… 태하가 바란 건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뭔가 대안을 제시하길 바랐는데, 그 역시 뾰족한 수가 없는 듯했다.


“탕감자가 큰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돼? 소환되나?”


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만나야만 했다, 수장이라는 존재를. 그러니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태하는 잡혀가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수면빚 탕감자 앞에 나서서 횡포를 부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잡아가는 존재가 나타났고 태하는 그 자리에서 잡혔다. 수은과 태하의 공통점이었다. 결론이 지어지면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그랬다. 진원은 애가 탔다. 수은의 걱정에 이제 태하의 걱정까지 보태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태하가 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수은의 삼촌, 현노의 사무실. 수은과 함께 회의하기 위해 그가 몇 번 들른 적 있는 곳이기도 했다. 태하는 상황판단이 되질 않아 어리둥절했다. 분명 수장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이때 빙그르르 의자가 돌아갔고, 드디어 수장의 얼굴이 보였다. 현노였다.


“이렇게 되는 것만큼은 꼭 막으려고 했는데, 결국 이리되고 말았군.”


태하는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제가 지은 죄니 제가 죄 값을 치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관리하는 수장일 뿐이야. 나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능력도 없어. 결국 선택은 그 애, 수은이의 몫이야.”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면, 수은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현노가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태하가 고통을 감내했으며 사실을 알고 용서를 구할 방법을 스스로 찾고 있었기에 수은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날 하루의 기억을 고통스럽지만 되찾을지, 아니면 그냥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지. 만약 수은이 기억을 되찾기로 결심해도 온전히 그 고통을 견뎌내고 태하를 용서해야만 그다음 단계, 즉 태하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었다.



# 다시 고통 속으로



그녀가 스르륵 눈을 떴다.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몇 번을 더 껌뻑이고 나서야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눈앞에 보인 건 태하였다. 어떻게 자신이 태하를 보고 있는지, 그녀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태하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슬며시 웃었다. 천천히 그가 손을 뻗자, 그녀가 잡았다.


수은을 일으켜 세운 태하가 그녀를 문 앞으로 데려갔다. 문을 여니 낯선 곳이 펼쳐졌다. 태하와 수은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그저 말없이 그냥 걸었다. 태하를 따라 잘 걷던 수은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집 앞이었다.


“싫다면 돌아가도 좋아. 내내 너에게 빼앗은 기억을 돌려주고 싶었어.”


가만히 태하를 바라보던 수은이 천천히 시선을 옮겨 자신의 집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롭다는 듯 태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심하게 말했다.


“다시 보고 싶었어. 이렇게라도.”



태하가 먼저 걸었고, 그 뒤를 수은이 따라갔다. 현관문 앞에 서자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자신이 없는 동안 딸의 먹을거리를 챙기느라 바빴고, 수은은 자기만 빼고 여행 간다고 투덜거렸고, 아빠와 오빠는 그녀를 달래느라 바빴다.


“사흘은 길지 않은 시간이야. 잘할 수 있지, 우리 딸?”


꼼꼼하게 냉장고 문에 메모를 붙였다. 찾아 먹기 좋게 끼니별로 나눠서 넣어놨다고 그림까지 그린 메모였다. 바라보던 그녀가 참지 못하고 태하의 어깨에 기댄 채 서럽게 울었다. 그녀는 그 밥을 먹지 못했다. 엄마가 차려준 마지막 밥상이었는데…


아빠는 여행 짐을 싣고 굳이 수은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는 잔뜩 골이 난 채로 못 이기는 척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도 내내 그녀는 뾰로통했다. 아빠와 오빠의 재롱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학교 앞에 도착했다. 가족의 포옹을 마다하고 그녀가 후다닥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수은이 눈에 밟혀 그녀의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한동안 떠나질 못한다. 수은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손을 뻗어본다. 닿을 법한 거리지만 어른거릴 뿐 닿지 않았다.



태하와 수은이 이동한 곳은 다리 위. 달리는 차들이 보였다. 그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되돌아가던 길, 갑자기 다리의 일부가 무너졌고, 시야에서 수은의 가족이 탄 차가 사라졌다. 교각 위에 올려진 채로 추락한 차도 있었고, 바로 물에 빠진 차도 있었다. 아슬아슬 교각에 매달렸던 버스가 잘 버티는가 싶더니 거꾸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차에서 빠져나와 구조를 시작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수은의 엄마가 보였다. 차와 함께 아빠와 오빠는 가라앉았다.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태였다. 가까스로 차에서 빠져나온 수은의 엄마가 물속에서 이설의 엄마를 부축하는 게 보였다. 이설의 엄마는 네 살밖에 안 된 어린 딸이 있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이설의 엄마를 떨어진 교각 위로 올린 수은의 엄마는 기운이 빠진 듯 천천히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남은 기운을 탈탈 털어가며 서로를 끌어주던 사람들. 누가 구조되고 누가 가라앉는지 서로 헤아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엄마, 아빠,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은이 들을 수 없었던 마지막 인사였다.


“차라리 데리고 올 걸, 같이 갈걸. 그러면 혼자 남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여보, 그런 생각하면 못써. 우리 수은이는 행복하게 살 거야.”

“그럼, 얼마나 강한데 내 동생. 아파도 잘 견딜 거야.”

“우리 많이 보고 싶어 하겠지?”

“인사도 못하고 가서 미안.”


점점 숨이 끊어지는지 목소리만으로는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호기심 많은 우리 딸, 세상 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멋진 얘기 많이 만들어 내렴.”

“하늘에서 네가 쓴 얘기들 꼭 다 볼 거야.”

“예쁜 우리 딸.”

“우리 막내.”

“내 동생.”


사랑해. 사랑해. 사랑… 해. 사…. 아가…



다시 태하와 수은이 이동한 곳은 학교였다. 그 시각 학교는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자기 반 학생이 등교하지 않아 애타게 집으로 전화하는 담임 선생님, 자기 엄마랑 아빠랑 통화가 되지 않는다며 목 놓아 우는 아이들 틈에 수은이 보였다.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는 어수선했다. 그녀는 말없이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는 중이었다. 마음속 그녀의 말이 태하와 수은에게 들렸다.


“무사히 건넜겠지? 그래, 아닐 거야. 설마…”


억지웃음을 지으며 짝꿍에게 수은이 투덜거렸다.


“우리 엄마랑 아빠, 오빠는 나만 빼고 여행 갔다? 나쁘지!”


눈물을 참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은의 어깨가 떨렸고, 이를 눈치챈 태하가 가만히 감싸 안았다.



간신히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교 운동장으로 남자 어른이 뛰어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밖을 내다본 죄로 불려 나간 수은이 칠판 앞에 서서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하려는데, 그때 담임 선생님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뒤로 삼촌 현노가 보였다. 선생님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칠판 앞에 분필은 든 채 서 있던 수은을 현노가 그대로 끌고 나갔다.


“삼촌, 나 가방은? 엄마가 싸준 도시락도 그냥 두고 가?”


수은의 말 따위에 관심도 없다는 듯 현노는 그녀를 차에 태웠다.


“벨트 매.”

“어디 가는 건데!”


평소 수다쟁이 삼촌인데 말이 없었다.



차는 유유히 도심을 빠져나가 강변 쪽으로 향했다. 멀리 뚝 끊어진 처참한 다리가 보였다. 외마디 비명도 지를 수 없어, 수은이 입을 틀어막았다. 현장의 우왕좌왕,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차 안까지 들리는 듯했다.


“삼촌 어디 가는 거야?”


차는 다리 밑으로 향했다. 시신들이 흰 천을 뒤집어쓴 채 늘어서 있었다. 고분고분하던 수은이 이제 짜증을 냈다.


“어디 가는 거냐고! 내 말 안 들려?”


먼저 차에서 내린 삼촌이 사람들 무리 쪽으로 다가갔다. 명단을 확인하더니 괴로운 듯 마른세수를 연거푸 했다. 그리고 수은을 바라봤다. 삼촌이 대신할 수 있는 게 있었고 아닌 게 있었다. 현노는 친삼촌이 아니었다. 수은을 차에서 끌어내려 시신 앞으로 데려갔다. 그녀를 앞에 세워두고 구급대원이 흰 천을 걷었다. 아빠의 얼굴이 보이고 그 옆으로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는 몇 사람 건너에 있었다. 교복 차림의 수은이 풀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픽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재의 그녀 역시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태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수은이 병실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삼촌 현노는 이곳저곳 쫓아다니며 할 일이 많았다. 남이라서 서류상 확인 절차가 원활하지 않아 고성이 오갔다.


“하나뿐인 딸이 지금 기절해서 누워있다고! 정신을 잃었다고!”


쩌렁쩌렁 삼촌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병원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았다. 기절한 수은 옆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서부터 서성이던 얼굴이었다. 인솔자인 듯 한 사람이 이끌었지만, 태하는 막무가내로 버텼다.


“이 아이를 혼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좀 더 이곳에 머물게 해 주세요.”


태하가 혼자 수은의 곁을 지켰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제 옆의 태하를 올려다봤다. 그는 눈앞의 광경도, 느껴지는 시선도 견디기 힘들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엄마, 아빠, 오빠의 영정 사진이 보였다. 얼마 전 함께 찍은 가족사진에서 오린 사진이었다. 수은의 신체 일부가 사진에 살짝 걸려있었다. 장례식장을 삼촌 현노가 혼자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이 없을 때마다 삼촌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수은이 현노를 향해 중얼거렸다.


“미안해. 혼자 힘든 거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


침대에 누워있는 수은을 멀거니 바라보던 태하가 가까이 다가갔다. 뭔가 고민에 빠진 듯 왔다 갔다 하더니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고 태하가 다시 수은에게 다가갔다. 인솔자의 음성이 들렸다.


“실습 기간에는 절대 인간과 접촉해서는 안 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절대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야. 알겠지?”


음성이 사라지자, 태하가 고개를 내젓더니 조용히 수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은이 곁에 선 태하를 바라봤다.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태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들 그녀를 걱정했다. 친구를 먼저 보낸 오빠 친구도 수은이 걱정, 아빠의 지인도 엄마의 지인도 모두 수은이 걱정뿐이었다. 삼촌에게 잘 부탁한다며, 수은이 잘 키워줄 거라 믿는단다. 현노에게 다가간 수은이 말을 건넸다.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꿋꿋하게 말했다.


“삼촌, 당신 참 고생 많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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