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 당신, 어디에 있나요
“빨리! 지금 빨리! 성수대교로 와요!”
‘태하가 사라진 걸까? 그렇다면 수은은?’
이설의 전화를 받은 진원의 머리가 빛의 속도로 생각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수은 씨 집에 가보세요.”
진원이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현노에게 소리치듯 말하고, 서둘러 성수대교로 향했다.
그 시각 성수대교 위, 이설의 엄마는 난간 앞에서 자신을 놔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설의 엄마를 부여잡고 있던 사람들이 진땀을 꽤 흘린 뒤에야 이설이 도착했다. 엄마를 발견한 이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그제야 이설의 엄마가 몸부림을 멈췄다. 곧이어 진원까지 도착하자, 이설의 엄마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냥 조용히 죽고 싶었어. 나 대신 그 여자가 죽은 거야. 그 여자가 누구냐고? 수은이 엄마잖아. 넌 몰랐어? 당신도 몰랐어? 왜 다들 모른 척해? 다 봤잖아. 내가 거짓말한다고 계속 나를 괴롭혔잖아. 나는 모른 척한 게 아니야. 나는 그 아이가 어디 사는지 몰랐어. 나는 나가고 싶은데 사람들이 못 나가게 했어. 나쁜 년, 네가 나를 가뒀잖아! 너는 그 여자한테 함부로 하면 안 돼! 네가 어려서 내가 산 거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지나간 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모두 살아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2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기에 더더군다나 그렇다. 죄 값은 굳이 남이 묻지 않아도 알아서 받는다. 반드시 받는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해와 위로였다. 어쩌면 이해받지 못하는, 위로받지 못하는 인간들 때문에 자꾸만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는 건지도 몰랐다.
붕괴 후 새롭게 건설해 이미 그때 그 다리가 아닌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찰, 구조대원, 이설의 엄마, 이설, 진원, 지나가다 이를 발견한 신고자, 숨어서 몰래 지켜보는 사람, 잘 곳을 찾아 헤매던 노숙자까지 각자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설은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현장은 말끔하게 정리됐다. 그때 현노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빈집인데?’ 그렇다면 아직 태하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태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는 지금 수은의 시간을 너무 많이 갈취하고 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태하의 기운이 느껴지자, 진원이 그 기운을 따라갔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그의 기운은 가까워졌다가도 금세 멀어졌다.
“그래서 내가 이 다리를 맴돌았구나.”
이제야 태하는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인간의 잠을 갈취하는 존재면서 태하는 어딘지 그들과 완벽하게 섞이질 못했다. 그들은 늘 자신을 내치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수은의 기억을 지운 자신도, 아무것도 모른 채 수은의 잠을 갈취하려 했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그녀의 생을 일부 갉아먹고 있는 자신은 더더군다나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 이상은 수은의 잠을 갈취해선 안 된다. 또 한 번 태하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엔 진원이 더 이상 수은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니까. 어쩌면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태하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의 집으로 가야 해!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남겨야 한다고!”
태하는 수은의 집으로 향했다.
수은의 집 근처 어둑한 골목길. 태하가 우두커니 서서 그녀의 집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는데 몇몇 무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이 나타나자, 골목길이 갑자기 더 어두워졌다. 갈취자들이었다. 떼 지어 다니는 법이 없는 존재들인데, 어디선가 냄새를 맡은 듯했다. 그들에게 태하의 존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갈취자 무리가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장시간 돌아다닌 태하에겐 불리한 상황이었다. 있는 힘껏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태하는 그들에게 수은의 시간을 빼앗겼다. 갈취자 무리가 태하에게서 빼앗은 시간을 야금야금 나눠 가졌다. 그런데 그때, 번쩍하는 빛과 함께 나타난 누군가 찢어질 듯 호통쳤다.
“네, 이 노옴!”
현노였다.
“너 이 자식!”
갈취자들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우리 수은이 어딨어!”
현노의 호통에 태하가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그는 그녀의 시간을 갈취자들에게 빼앗겼다는 걸 인지했다.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몸 상태였지만 태하는 수은의 집으로 향했다. 악을 쓰며 미친 사람처럼.
“어서 돌려줘야 해!”
멀리서 태하의 울부짖음을 감지한 진원이 서둘러 수은의 집으로 향했다. 진원은 신발 벗는 것도 잊고 무작정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수은은 미동도 없이 천장을 응시한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음에도, 낯선 이가 다가왔음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태하가 사라졌으니, 이제 수은의 차례였다. 진원은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가 도망갈 수 없도록 방문을 닫고 막아섰다. 문을 닫는 소리에 그제야 수은이 진원을 돌아봤다.
“못 한 얘기가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수은이 진원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왜 자신은 늘 소중한 존재들에게 이런 아픈 얘기를 들려줘야 하는지, 진원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왜 수은이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일까. 매번 궁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과거 그가 인간이었던 시절, 그녀와 인연이 닿아있는 게 아닐까. 진원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진원은 꾸역꾸역 말을 이어갔다. 동생 같은 그녀에게 오빠가 되어주고 싶었다.
“태하는 본래 나와 같은 탕감자였어요. 수면빚 탕감 수련 과정 중 인간 세계에 실습을 나왔는데 그게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했던 바로 그때였고.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 가족을 잃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당신을 보게 된 거예요.”
수은이 고개를 돌려 진원을 봤다. 진원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잘 못하면 그녀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너무 자신이 인간의 삶에 이입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진원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태하가 그때 정신을 잃고 쓰러진 당신 곁에 머물렀는데, 깨어난 후 괴로워할 게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든 당신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을 거예요. 태하에겐 자신도 모르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는데, 하필 그 순간 그 능력을 사용한 것 같아요. 그렇게 당신은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한 당일의 기억을 잊게 된 거예요. 잊힌 그 하루의 기억이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기억은 남아서 괴롭히기도 하지만, 더러 사라져서 괴롭히기도 하니까요.”
진원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수은이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진원은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 말을 정말 입 밖으로 꺼내놓아도 되는 건지,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수은과 눈이 마주치자, 이번엔 진원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리고 결국 망설였던 그 마지막 말을 하고야 만다.
“태하는 당신의 기억을 지운 죄로 자신의 기억까지 지워진 채로 쫓겨났고, 지금의 상태가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들어서 과거의 일을 알고 있고. 그 얘기를 들을 때 태하가 괴로워했어요. 당신한테 무척 미안해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로 오는 마지막 길에 습격을 당한 것 같아요. 아마 소멸… 소멸했을 거예요. 갈취자는 다들 그렇게 사라지니까.”
놀란 탓에 지나치게 커진 수은의 눈에 점점 눈물이 차오르더니 급기야 흘러내렸다. 어찌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처럼 하염없이. 차마 자신의 눈물은 보일 수 없어 진원은 수은을 꼭 끌어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수은을 위로하는 것인지 수은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진심
진원이 돌아가고 나서 멍하니 하늘을 보던 수은이 가족사진 앞에 섰다.
“엄마, 아빠, 오빠! 내가 그날을 기억 못 해서 섭섭해? 그래서 나 지금 벌 받고 있는 거야? 근데 왜 난 선물을 받은 거 같지?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할까? 나 대신 그 사람이 벌 받는 거 같아. 어쩌지?”
내내 수은을 괴롭히던 엄마, 아빠, 오빠의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수은이 귀를 감쌌다.
“괜찮아.”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하일 것이다. 수은이 천천히 귀를 감쌌던 손을 내렸다. 이렇게라도 살면서 내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뜨거운 눈물이 수은의 볼을 타고 흘렀다.
행복한 엄마, 아빠, 오빠의 목소리 사이로 과거 자신의 목소리도 들렸다.
수은이 자신의 방을 빠져나와 작업실로 향했다. 만날 수 없는 존재에게 남길 거라곤 글뿐일 테니까. 그가 이렇게 쉽게 소멸할 리 없으니까. 꼭 한 번 다시 나타날 거라고 믿으니까. 집 안 어디에 메모를 남길까 아니면 모두가 보는 연재 글에 마음을 남길까, 고뇌에 빠진 수은이 작업실을 서성였다. 그러다 메모가 가득 적힌 벽 앞에 섰다. 그간 두 존재와 함께하며 정리했던 메모였다. 그들이 들려줬던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을 닮아있었다. 어떤 부분에선 자기 존재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둘 다 상상력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두 존재의 모습이 떠오르자, 수은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진원과 태하는 전혀 다르기도 했지만 참 많이 비슷했다. 친구였을 두 존재의 모습을 상상하자, 그녀는 괜히 흐뭇했다. 이야기의 엔딩을 어떻게 적어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녀가 겹겹이 쌓인 곳의 메모를 뒤적였다. 그러자 툭, 몇 개의 메모가 떨어졌다. 낯선 글씨였다.
그녀는 눈물을 모르고 살았다. 별로 울 일이 없었다. 아니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어쩐지 자신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렀다. 그녀가 허공을 향해 고해성사를 했다.
“나만 살아서 미안, 목소리 듣는 걸 괴로워해서 미안. 그리고 또 잘 모르겠는데 그냥 다 미안.”
연재 글의 멈춰진 ‘여자’ 부분을 이어서 써 내려갔다. 여자는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길 바랐다. 세상에 꼭 남아야 한다면 이야기로 남길… 그러다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수은이 나갈 준비를 했다. 다 차려입고 나니 집 안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었다.
집 밖을 나선 수은은 이곳저곳에 서 있는 자기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싫다 싫다 하면서도 살고 싶었구나.’ 카페 방명록에도 흔적을 남기고, 절에 소원 적는 곳에도 흔적을 남기고, 하다못해 공사장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에도 흔적을 남겼다. 소리로 자신을 찾고, 향기로 자신을 찾는 두 남자가 언젠가는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수은이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이만하면 됐겠지? 진심이 전달되겠지? 이 정도면 아름다운 안녕이겠지?”
수은은 진원과 태하가 아닌 듯하면서도 둔해 보여 자신이 남긴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래! 오늘 하루 수고했다, 진수은!”
이렇게 마음을 드러낼 기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수은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침실로 향했다.
“나… 자고 싶은데…”
허공을 향해 수은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인생이 너무 괴로워서, 몹시 잠들고 싶어 해야 갈취자가 나타난다는데, 지금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그도 자신처럼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야 할 테니까. 자신이 잠들어야만 그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니, 어쩐지 자신이 쓴 이야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굴레가 씌워진 것만 같아 그녀는 속상했다. 그를 볼 수 없다는 게 그녀는 너무 슬펐다.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