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원칙과 자비로움 사이 그 어디쯤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내일까지 대본 꼭 완성하자!” 후배 작가와 약속합니다. 하지만 변수는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늦어진 이유가 합당하면 화가 나질 않습니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를 함께 해결해 주기 위해 고민하죠. 그런데 이게 저와의 약속이면 달라집니다.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릅니다. ‘대본을 끝내지 않고 잠을 자다니…’ 혹은 ‘지금 밥이 넘어가니?’ 어떨 땐 생존 본능까지도 원망합니다.
왜 타인에게는 자비로우면서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한 걸까요?
큰 결정을 내릴 때는 원칙을 중시하되 모든 일에 엄격할 필요는 없으니 작은 일은 융통성 있게, 너그럽게 받아들이자는 의미일 거예요. 그런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특히 저한테는요.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아 자책하게 되면, 그렇게 자책이 잦아지면, 악영향이 곱절로 커져서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지요. 자책이 점점 몸집을 키워서 결국엔 건강까지 해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한 가지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쓸데없이 자책하기 시작하면 자책하게 만드는 대상을 ‘그’라고 지칭하고 그가 또 찾아왔다며 기록을 남기는 거죠. 어떤 날은 ‘방해자’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고, 어떤 날은 ‘나쁜 녀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명칭을 적어놓고 보니 절대로 함께 해선 안 될 존재가 확실합니다. 끄적거린 낙서 사이에서 예쁜 말도 발견했습니다. 나쁜 마음은 어디 버릴 데가 없으니 여기 수첩에 버린다고요^^
자책하는 주체를 제가 아닌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나니 벗어나는 것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지요. 과거의 저라면 자책했을 일을 요즘은 가끔 모르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나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선 온전한 내가 필요할 겁니다. 자책하는 나를 회피하기보단 마주해야 할 겁니다. 똑바로 바라보면 무섭지 않으니까요. 계속 보다 보면 더러는 해결책이 보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 완벽주의자도 좋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여러분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훨훨 날아갈 수 있게 날개를 달아주면 어떨까요?
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