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내내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제법 두꺼워서 계속 시작할 엄두를 못 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읽기 시작하니까 달랐습니다.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조르바’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부딪혀 실행하고, 실패해도 웃으면서 다시 시작하고,
누구의 기준이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인물이잖아요. 삶의 순간을 춤으로, 음악으로, 사랑으로, 표현해 삶을 마치 예술처럼 사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인물이 매력적인 것도 한몫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배우 남경읍 선생님과 방송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그즈음 선생님께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라오지앙후 최막심>의 주인공을 맡으셨거든요. 어쩌다 보니 공연을 먼저 보고 책을 읽게 된 거죠. 책을 읽는 내내 아주 생생하게 남경읍 선생님이 ‘조르바’가 되어 제 눈앞을 휘젓고 다니셨습니다. 아주아주 소중했던 그 옛날의 경험 얘기에 오프닝이 샛길로 빠졌네요^^;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조르바’는 어쩜 그렇게 쿨~ 할 수 있었을까요. 제 짧은 식견으로 추측해 보자면,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결코, 잊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이 유한하기에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차피 끝이 있으니까 더 힘내서 달려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는 어쩐지 끝이 보이면 힘이 납니다.
왜 종종 우리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나누어 구분하곤 하잖아요. 기대수명을 몇 살까지 설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무척 크더라고요. 기대수명을 80세로 설정했을 때 마흔이 오후 12시, 정오라면, 100세로 설정했을 땐 오전 9시 36분이었습니다. 어휴,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중년인데 아직 정오조차 되지 않았다니요! 겁도 났습니다. ‘정말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제대로 나의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
그래야만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만큼은 사는 동안 꼭 이루고 싶습니다.
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