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83화

[수] 잘 보이지 않을 때

by 박선향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안과 관련 방송을 준비할 때였는데, 노안 수술을 하고 나서 오히려 우울해졌다고 후회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잘 보여서, 거울로 자글자글한 얼굴의 주름이 잘 보여서 괴롭다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30대였을 때 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르신들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갔다가 거울 앞 환한 조명 탓에 민낯을 아주 제대로 보았습니다. 평소에 밝은 걸 좋아하지 않아 불을 아주 환하게 밝히는 일이 드물거든요. 그래서 별처럼 박힌 천장의 전등 16개가 전부 켜지는 날이 손에 꼽힙니다. ‘아, 이제 내 얼굴도 나이가 드는구나.’ 철이 없어서인지, 동안이라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이젠 제 나이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너무 선명하게 보고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평안하니까요.


화면해설 작가 공부를 하면서 되도록 주어를 앞에 두는 문장을 쓰자 다짐했는데, 얼마 전 새로 산 작법 책에도 그렇게 적혀있더라고요. 주어를 맨 앞에 두면 혼선이 사라져서 목적이 더 분명해진다고요. 눈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게 뭐든 선명하게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방향을 잃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곁가지를 떨쳐낼 수 있어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 하나만 볼 수 있게 되었달까요.


목적지가 어딘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잘 보이지 않아도 열심히 차근차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생 시절엔 시를 쓰다, 방송작가가 되어 대본을 쓰면서 사이사이 짬을 내 소박하게 소설, 연극, 뮤지컬, 드라마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장르를 잃고 문장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겪으며 어딘지 아직 잘 모르지만, 그 길로 일단은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을 보는 눈도, 마음의 눈도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니 혹시 오늘 아침, 그게 뭐든 잘 안 보여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 내가 지금 아주 잘 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보세요. 잘 보이지 않아도 한걸음쯤 내딛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연결되어 나만의 길을 완성해 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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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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