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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Aug 15. 2021

날아라 오리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백조알이 아닌 오리알에서 태어난 오리 이야기

숲 속 커다란 호숫가 오리마을에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도 막내오리네 둥지에서 변함없이 엄마오리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오리는 마지막으로 알을 깨고 나올 때부터 유난히 작은 몸에 볼품없는 생김새로 엄마오리의 걱정을 샀다. 오리학교에서도 가장 작은 몸으로 열심히 배웠지만 늘 꼴찌였다. 형과 누나오리들도 친구들이 막내를 '꼴찌 중에 꼴찌'라고 놀려댄다며 핀잔을 주었다.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던 어느 날,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막내오리네 둥지에 나타났다. 매는 가장 통통한 첫째, 둘째 오리를 덥석 골라 물고 밤하늘로 사라졌다. 엄마 품에서 뒤척이던 막내오리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 까무러치고 말았다. 막내오리가 깨어났을 때 둥지엔 아무도 없었다. 사라진 두 형들을 찾아 헤매던 엄마오리와 누나오리들이 밤늦게 돌아왔다. 막내오리는 혼이 날까 두려워 어젯밤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꼴찌에다 겁쟁이 오리로 놀림받을 것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날마다 안절부절못하던 막내오리에게 촌장할아버지가 해준 귓속말이 문득 떠올랐다.

막내오리는 모두가 잠든 밤 둥지에서 빠져나와 촌장할아버지 둥지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할아버지, 저 막내오리예요. 물어볼 것이 있어 왔어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촌장할아버지 오리가 막내 오리를 둥지 안으로 들였다.     

둥지의 노란 불빛을 받은 촌장할아버지 오리는 너그럽고 지혜로워 보였다.


"그래, 무엇이 궁금해서 늦은 밤에 여기까지 왔느냐?"    

"할아버지께서 저희가 태어난 걸 축복하러 둥지에 오신 날,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라고 하셨잖아요. 사실은..."


막내오리는 그날 밤 이야기를 꺼내려다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촌장할아버지 오리는 말없이 막내오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두려움을 이겨내야 다음 계단을 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막내오리는 용기를 내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막내오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촌장할아버지 오리가 말했다.


" 그날 밤 네가 비명을 질렀더라도 엄마오리는 매가 형들을 낚아채 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러니 너무 괴로워 말거라. 형들을 찾으러 가려면 하늘을 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배울 결심이 섰느냐?"

"예, 할아버지. 그런데, 오리도 날 수 있나요? 오리가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고 본 적도 없어요. 엄마도 날개는 이럴 때만 쓰시던걸요."


막내오리가 작은 날개를 펼쳐 토닥이는 흉내를 내자 촌장할아버지 오리는 빙그레 웃음 지으며 말했다.

 

"오래전 오리들도 하늘을 훨훨 날아 넓은 세상을 보고 들었지. 먹이는 사방에 널려있고 날씨는 온화한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오리들은 점점 날지 않게 되었단다. 오리마을에 닥칠 위험에 대비해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치라는 사명이 대대로 촌장에게 주어졌지. 짝을 짓지 않아 혼자 사는 나는 알에서 깨어난 모든 아기오리들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라고 속삭였단다. 하지만 어떤 아기오리도 내게 오지 않았어. 아마 너도 형들이 잡혀가지 않았다면 마찬가지였겠지?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날개가 굳어 어른이 되어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해. 나는 늙어 날개 힘이 없어 날수 없지만 너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단다."


촌장할아버지 오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막내오리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촌장할아버지, 제 몸은 이렇게 작고 날개도 볼품없는데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그럼. 작은 몸은 널 더 높이 날 수 있게 하지.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엄마와 이야기해보자꾸나."  


엄마오리는 형들도 사라졌는데 막내오리마저 떠나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막내오리는 날개 힘이 커지도록 밤낮없이 날개를 저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돌멩이를 물어 부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늘을 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막내오리의 날개는 더욱 탄탄해졌다.


여름 햇살에 잔뜩 그을린 막내오리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형들을 찾으러 가기 위해 날개를 펼쳤다. 오리마을 숲을 벗어나자 커다란 숲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사라졌다. 막내오리는 부리로 나무를 경쾌하게 쪼아대던 딱따구리 아저씨, 느티나무에 사는 올빼미 아줌마, 긴 강물에서 헤엄치던 수염 난 매기 할아버지와 쏘가리 소녀를 차례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두 형을 낚아채간 사나운 매가 울창한 숲 속에 있는 매의 마을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의 마을로 가기 위해 오랜 날갯짓으로 숨이 차고 지친 막내오리는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깎아지른 절벽만이 계속되었다. 날개의 힘이 점점 없어져 강물에 곤두박질 칠 것 같았다. 막내오리는 있는 힘을 다해 깎아지른 절벽 틈새에 발을 디뎌 보았지만 번번이 헛수고였다. 뾰족한 절벽에 부딪힌 발이 찢겨 피멍이 들었다. 작은 틈을 겨우 찾아내 몸을 누인 막내오리는 춥고 배고픈 데다 찢긴 상처의 고통으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리를 꽉 깨물었다.


매의 마을이 가까이 있는 숲 속에 내려앉아 주위를 살피던 막내오리는 작은 연못이 보이자 목을 축이기 위해 그곳으로 걸어갔다. 연못에 도착한 막내오리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형들 오리가 밧줄에 묶여 연못가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형들은 살이 너무 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잠시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막내오리는 사나운 매가 가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큰형! 작은 형! 나 막내오리야..."

 

막내오리는 형들을 부르며 목이 매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사나운 매는 멀리 떨어진 오리마을에서 형제 오리를 잡아와 연못에 숨겨 두고 살을 찌웠다. 이곳 숲 속에서 보기 힘든 오리를 사냥한 것처럼 속여 사냥대회에서 뽐낼 생각이었다. 사나운 매는 해가 뜨면 연못으로 날아와 오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감시하고 해가 지면 마을로 돌아갔다. 매일 밤 형제 오리는 작은 연못에서 도망쳤다. 뒤뚱뒤뚱 걷는 데다 밧줄의 양쪽 끝에 발이 묶인 형제 오리는 다음날 아침이면 사나운 매의 눈에 띄어 어김없이 다시 잡혀왔다. 큰형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일이 사냥대회가 열리는 날이야. 사냥터에 숨길 곳을 찾으러 간 사나운 매는 오늘 밤 돌아와서 우리를 사냥터로 끌고 갈 거야. 너도 우리와 같은 신세가 되기 전에 얼른 집으로 다시 돌아가.”  


막내오리는 사나운 매가 어떻게 무거운 형들 오리를 다시 잡아오는지 물었다. 작은 형 오리가 대답했다.


"우리를 양쪽에서 묶은 이 밧줄은 매들이 사냥에 쓰는 그물을 여러 번 꼬아 만든 거야. 사나운 매는 우리를 묶은 밧줄의 중간쯤을 물고 난단다. 다리에 밧줄을 얼마나 세게 묶었는지 아무리 빼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어. 우리도 날 수 있다면 벌써 이곳을 도망쳐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 순간 막내오리가 땅을 박차고 높이 날아 올라 숲 속에서 가장 큰 소나무 꼭대기에 잠시 앉았다 내려왔다. 형들 오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막내오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밧줄의 중간 부분을 부리로 꽉 깨물었다. 막내오리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막내오리가 힘을 주며 날갯짓을 시작하자 형들의 몸이 조금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막내오리의 두 날개는 형들의 살찐 몸을 버틸 수 없었다. 막내오리는 내려앉고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숲에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형 오리들은 막내오리 혼자만이라도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다. 그때 막내오리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형들에게 말했다.


"형들도 하늘을 날자. 형들이 날갯짓만 멈추지 않으면 내가 밧줄을 물고 날 수 있어.”


막내오리는 날개를 위아래로 젓다가 활짝 펼쳐 바람을 타고 나는 법을 보여주었다. 형 오리들은 막내오리를 따라 날개를 퍼덕였다. 어설퍼 보였지만 그것은 분명한 날갯짓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 속에서 파닥파닥 날갯짓 소리가 여러 차례 퍼져나갔다. 단단한 부리로 밧줄을 물고 있는 막내오리가 숲 위로 날아올랐다. 밧줄 양 끝에 발이 묶인 큰 형, 작은 형 오리가 쉼 없는 날갯짓으로 바람을 저었다. 세 마리 형제 오리가 피라미드가 되어 밤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달빛과 함께 강물에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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