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
찌릿한 통증이 오른쪽 무릎 주변에 갑자기 나타났다. 걸음을 옮기다 맥없이 주저앉는 일이 잦았고, 잠결에도 몇 번씩 일어나 저린 무릎을 주물러야 했다. 전기 충격 같은 아픔이 가라앉으면 무릎 근처에 뭔가가 꼬물대며 기어 다니는 불쾌감이 몰려왔다. 여러 군데 병원을 옮겨 다닌 끝에 찢어진 연골과 그 부스러기들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왜 빨리 병원에 오지 않았냐며 나를 나무랐다. 결국 줄기세포를 배양해 무릎뼈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술 날 아침, 전신 마취제의 거부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오른팔에 테스트를 했다. 약을 바른 부위에 발갛게 발진이 올라왔다. 세 번째 시약까지 반응이 계속 일어나자 초조한 표정으로 간호사가 병실을 나갔다. 잠시 후 마취 담당의사가 배합한 시약을 직접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가 마취약을 솜에 묻혀 왼쪽 팔 안쪽에 두드렸다. 이번에도 거부반응이 나타나면 수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의사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섬뜩한 통증이 계속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처지고 입안에 침이 마른다. 마취약 반응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병실에 정적이 흐른다. 거부반응이 없다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수술 전의 긴장감과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마취 담당 의사가 수술 준비를 위해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 나를 수술실로 데려갈 바퀴 달린 침대가 들어오고 일사불란하게 간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멍 낸 무릎뼈에 이식한 줄기세포가 자라는 두 달 동안 오른쪽 다리를 디디지 않아야 한다. 기계로 매일 운동도 해야 했다. 연골의 찢어진 부위를 잘라내 뻑뻑해진 무릎을 기계가 부드럽게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는 동안 꼼짝 않고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무료한 시간을 함께 할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프랑스에서 온 그녀는 절제된 몸가짐으로 단정하고 우아해 보였다. 그녀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리의 명성 높은 학자의 집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어요. 한 화가가 찾아와 학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지요.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거금을 제시해도 거절하기로 유명한 화가였어요. 여러 차례 고사하던 학자는 화가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그러라고 했어요. 초상화를 그리던 첫날, 학자는 자신의 초상화에 나도 같이 그려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했지요. 화가는 말없이 나를 학자 옆에 세우고 스케치를 시작했답니다.”
자세를 바꿔 앉으며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인터넷에서 학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볼 수 있어요. 그림 속의 학자는 소박한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책을 펼쳐 둔 채 생각에 잠겨 있는 학자의 얼굴에서 인품이 드러나지요. 나는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 오도카니 서서 학자를 올려다보고 있답니다. 학자는 이 초상화와 함께 나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의 집으로 보냈어요. 제자는 세상을 떠나기 전 멀리 있는 아들에게 나를 보냈지요. 이렇게 여러 곳에 머물고 떠나기를 여러 차례, 어느덧 바다를 건너 당신의 집까지 왔네요.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해 당신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다녀온 날이었어요. 그날 당신은 입구에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한 건물을 유심히 보게 되었노라고 내게 말했지요.
붉게 물든 눈시울로 당신이 읽어 주던 기사도 떠오르네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과 엄마 이야기였지요. 그녀는 아들을 위해 휠체어로 오르내릴 수 있는 지하철역 출구들을 하나하나 지도로 만들었댔어요.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을 엄마 홀로 감당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당신은 한숨을 쉬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시간들을 후회한다고 했지요. 휠체어에 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장담하던 순간도 부끄럽다 했습니다.
어느덧 당신도 그 옛날 학자처럼 나를 바라보네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실천했던 그분을 닮아가는 것 같아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인 그녀의 이름은 '모래시계'. 오늘도 그녀는 푸른 모래의 치마를 입고 유리병 안에서 시간을 가늘게 뽑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