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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Feb 02. 2024

화병과 우울증은 동전의 양면

건강을 위해 생각해 볼 것들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의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각기 달라도 그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상처받은 감정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달고 마시는 것도, 밤중에 라면과 아이스크림이 땅기는 것도, 몸을 혹사할 만큼 운동을 하는 것도, 한 겹 걷어낸 그곳에는 마음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환자의 이야기 귀를 기울이면 모든 병은 심리적 문제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란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병은 크고 작은 일상의 선택이 쌓여 생기고, 그 선택의 이면에는 감정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다.


상담을 하면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많이 사람이 화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얼핏 생각하면 전혀 다른 병 같지만 두 증상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두 가지 모두 울증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울증의 형태에 따라 <울>화병이 되기도 하고 우<울>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울증은 소통이 되지 않고 답답한 상태를 말한다. 한자로 울은 다음과 같이 쓴다.

   

                                                                                                               鬱 



아~ 글자부터 상당히 답답한 느낌이다.


그 기원은 향이 좋은 술을 그릇에 담아두고 뚜껑을 덮은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꽉 막혀 있으니 향이 위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잔 안에 가득 차게 된다. 이 답답한 상황이 바로 울의 상태다. 우리 몸에서는 이 현상이 주로 몸통의 위에 있는 가슴에서 발생한다. 울증 환자가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치고 한숨을 자주 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 왜 어떤 사람은 울화가 치밀고 어떤 사람은 우울해지는 걸까?   


먼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가를 봐야한다. 열 받을 일이 생기면 화가 나고 슬픈 일을 겪으면 우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기도 한다. 성격이나 기질 그리고 에너지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무거운 별은 초신성 폭발을 하고 블랙홀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별은 팽창하다가 작고 차가운 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너지가 많고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마치 기름에 물이 튀는 것처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도 격렬해서 화火의 형태로 가기가 쉽다. 머리 뚜껑이 열리고 가슴은 뜨겁고 답답해서 찬물과 아아를 벌컥벌컥 마신다. 직장에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상사를 씹으며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먹을지도 모른다. 술을 마셔도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들이 킬 것이다. 때론 영혼이 날아갈 정도의 극단적인 매운맛이 주는 자극을 즐길수도 있다.   

이에 반해 에너지가 적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우울로 가기 쉽다. 초콜릿이나 달달한 과자를 좋아하기 쉽고, 설탕과 탄수화물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한숨을 자주 쉬고 답답함을 매운 음식으로 풀기도 하지만 많이도 먹지 못한다. 잠깐 이라도 편해지려는 마음에 담배를 태우거나 혼술을 즐기다가 알코올의존중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상황을 벗어날 힘이 없다 보니 자꾸만 더 가라앉고 위축되기 쉽다. 때론 이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서 더욱 안으로 곪아들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오래된 화병은 얼핏 보면 우울증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를 계속 끓이고 살다 보면 힘이 떨어져 화를 낼 기운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를 하다 보면 그 아래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숯불을 발견하게 된다.


환자를 치료할 때는 화병도 우울증도 ‘울’의 상태를 풀어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술잔의 뚜껑을 열어 갇혀 있던 향이 날아갈 수 있도록 한다. 가슴의 답답함을 풀어내어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화가 있으면 살살 식혀주고 우울할 때는 기운을 북돋아 주어 웅크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나를 화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타노스의 건틀렛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좀 더 유연하게 다루는 것은 가능하다. 조금 편해지고 숨 쉴 틈이 생기는 것이다.  

   
감정의 문제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울증을 풀어내는 것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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