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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Feb 07. 2024

정말 일 년 내내 사과와 당근을 드실 건가요? (1편)

건강을 위해 생각해 볼 것들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로 알려진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농업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가 제안한 농업방식을 ‘생명역동농업’이라 부르고,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이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다.       


다음의 내용은 그가 식물의 병에 관해 말한 것인데, 생명역동농업이 어떤 관점에서 시작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식물 자신이 실제로 병이 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식물은 건강한 정기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특히 땅은 병들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식물병에 대한 원인은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환경과 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 변종인 옮김, 정농회-     


슈타이너(Rudolf Steiner) 오스트리아 태생의 과학자·편집인·인지학 창시자. ⓒ GS /wikipedia | Public Domain

슈타이너의 이런 관점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병의 원인을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의 부조화에서 찾는 한의학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위에 인용한 책은 1924년 슈타이너가 독일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농업강좌를 정리한 것이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담겨 있다.     

 

정신 수양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실제 정신 경험에 이르기가 어렵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에 옮기는 의지가 왜 그렇게 미약한가 하는 질문에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것은 정신을 물질에까지 나타나게 하는 힘을 사람에게 전혀 줄 수 없다. 생각하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옭기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요즈음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나 채소 안에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들어 있지 않다.”    

 

암모니아합성에 성공하면서 화학비료의 시대가 열린 것이 1915년 이었고, 질소비료로 대표되는 화학비료의 생산과 함께 식량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이와 함께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질적으로는 저하된 식재료라는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강연이 열린 시기는 1924년. 벌써 이 시기에 우리가 먹는 음식이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없다고 슈타이너는 말하고 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을 그가 보았다면 뭐라고 할까? 어쩌면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제조 과정에서 그나마 갖고 있던 좋은 영양을 잃게 되는 가공식품은 일단 논외로 하려고 한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다만 너무 쉽게 중독되는 편리함과 영양은 결핍된 화려한 맛의 치명적 유혹을 우리가 얼마나 이겨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는 왜 단짠에 쉽게 중독되는걸까? (brunch.co.kr)를 참고)     

 

여기서는 일 년 내내(계속 먹으면 5년 10년이 될 수도 있다) 사과와 당근과 같은 과일과 채소를 먹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에 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쓰는 말 중에 “게미있다”란 표현이 있다.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향이 잘 느껴지고, 처음엔 잘 모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첫맛은 확 끄는데 몇 번 먹으면 그저 그렇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맛이 없어지는 요즘 음식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나는 이 ‘게미’란 말이 ‘기미氣味’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음식에서 식재료가 가진 맛 뿐만 아니라 그 고유의 기질을 함께 담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슈타이너가 이야기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운과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먹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고, 모든 생명체는 그 주변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맹모삼천지교와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같은 삼이라도 산중에서 자란 산삼과 밭에서 재배한 인삼이 다른 것도 그 환경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꽃도 온실 속의 화초는 그 향이 확 피었다가 사라지지만, 야생화는 그 향이 은근하고 오래 멀리 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취한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명을 취하고 번식을 돕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간다.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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