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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Feb 07. 2024

정말 일 년 내내 사과와 당근을 드실 건가요? (2편)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제철은 그 맛과 향은 물론이고 우리가 먹는 식재료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표현을 빌리면 ‘게미’ 있고 ‘기미’가 뛰어난 시기다. 영양은 물론이고 슈타이너가 말한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는 힘을 그나마 일정정도 품은 시기일 것이다. 그 힘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의 것을 채취하는 시절이 아니라 팔기 위해 대량으로 농작물을 재배한 이후로 그 기운은 한단계 낮아졌고,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또 한단계 낮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철음식을 먹는 것은 이 외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다. 일단 그 생산량이 많고 내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서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하고 그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또한 대량생산의 종목이 아닌 우리가 오랫동안 먹어온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제철음식의 장점이다. 자신이 최근 한달동안 먹은 음식을 한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아마 그 음식 속에 들어간 식재료의 단순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대형마트의 상품이 되지 못하고 적은 양이 생산 혹은 채취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산지의 재래시장이나 생산자와 유대가 튼튼한 협동조합이나 로컬푸드 매장을 이용하는 것은 제철 식재료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의 다양성은 미식의 차원 뿐만 아니라 내 몸의 건강에도 중요하다.


Copyright© 지디넷코리아


대량생산 되는 상업화된 작물의 경우 많은 개량을 거쳐 모양이 좋고 생산량이 많고 맛이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 우리 입맛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미’중 맛만 남고 기운은 사라진 맹탕 같은 작물들도 등장했다. 그 중 강조되는 것이 아마도 브릭스로 표현되는 단맛일 것이다. 어릴 적 먹었던 사과와 귤에서 느꼈던 ‘게미’는 이제는 맛보기 힘들어졌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먹는 작물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바나나의 유전적 단일성을 우려하는 것처럼, 인간의 입맛에 맞게 길든 작물의 건강은 위태롭다.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이야기를 다룬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보면 식물들이 원산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인간의 입맛에 길들여진 품종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종의 특성과 본연의 야성을 잃은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충분히 키워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에너지 문제다. 자연이 만들어 준 환경에서 자라는 제철 식재료는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 철이 아니라면 그 생장조건을 맞추기 위해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또한 식재료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은, 그 영양이 신선한 제철 식재료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을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기후위기의 본질이 에너지 문제인 것을 감안한다면, 가능한 외부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농사방식은 작물의 건강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연이 본래의 리듬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탄소발자국을 많이 남기는 수입품은 가능한 지양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건강을 위해 특정한 식재료를 매일 먹으라던가 거기서 추출한 물질들을 복용하라는 정보들이 유행이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들마저 마치 통증에 진통제를 복용하고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먹는 것과 같은 대증약이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우리가 먹는 식재료에는 식품영양학적으로 규명된 영양성분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 슈타이너가 기운 혹은 힘이라고 부르는 것이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 또한 물질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미량 원소들의 집합일 수 있다. 작물이 자라면서 주변 환경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축적하고 만들어 낸 물질들이 있을테니 말이다. 사람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성질이나 기질이 때로는 체질까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처 : 한살림 홈페이지


우리가 먹는 식재료를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그리고 그것을 키워낸 환경과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보면 좋겠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건강을 위한 영양의 섭취가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 싼 관계 속으로 내가 들어간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의 기본은 특정 효과를 지닌 식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철음식을 식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 내 식탁 위에 실험실의 영양성분이 아니라 계절과 관계를 올리는 것은 내 건강을 물론 나를 둘러싼 환경을 함께 살리는 선택일 수 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자신의 외가인 강릉의 방풍죽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른 봄, 방풍의 새순으로 끓인 죽의 맛과 향이 너무 좋아서 그 향기가 사흘이 지나도 입안에서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다분히 과장이 섞인 표현이겠지만, 읽을 때마다 제철음식의 기미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인에게는 새해 계획을 세울 기회가 두 번 주어진다. 양력 1월 1일과 설날이다. 올해 건강에 좋다는 식품을 몇 달이고 먹어야겠단 생각을 했다면 그 계획을 지우길 바란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일주일에 한 번 로컬푸드 매장에 가서 제철 식재료를 사서 제철음식을 해 먹기로 바꾸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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