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찬 Feb 28. 2024

나를 뺏는 병 암, 나를 잃는 병 치매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공중보건의로 보건소에 근무할 때였다. 같은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 누워서 침을 맞고 계셨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을 가끔 씩~ 웃어가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근데 **엄마 소식 들었지? 치매가 심해져서 이제는 식구도 못 알아보고, 자식들 고생이 말이 아니라네.”  

   

“긍게~ 나도 들었어. 암은 한 개도 두렵지 않아. 그냥 팍 죽어 버리면 되니까. 근데 치매는 나도 못할짓이고 뭣보다 자식들한테도 못할짓이여.”     


“맞어 ...”     


그 대화를 끝으로 두 분의 대화는 끝났다. 생각해 보면 한동네 살던 분의 우울한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아서였지 싶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병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암과 치매라고 말 할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는 관련 보험상품과 증축을 거듭하고 있는 메이저 병원들의 암병동과 밤에도 찬란히 빛나는 그 불빛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각종 건강 관련 채널의 단골 메뉴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각종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5년 생존율의 증가와 일부 암종에 관한 치료율은 높아졌어도 인류가 암을 정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증가하는 치매 또한 마찬가지다.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기대할 뿐,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는 수준의 인지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암과 치매는 전혀 다른 병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닮은 점이 많다.      


먼저 많은 종류의 암과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일종의 퇴행성 질환이란 점이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은 하나의 수정란에서부터 시작된다. 분열하고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은 진화를 통해 정교하게 발전했지만 완벽하지 않다. 당연히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바로 잡는 기전 또한 준비되어 있지만,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잡기 어려운 것처럼 놓치고 새는 것이 생긴다.  

    

처음에는 범죄자들이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지만, 자본과 권력을 얻으면 법망을 농락하고 이용하는 현상이 우리 몸에서도 발생한다. 처음에는 면역시스템에 의해 제거되고 무력화되던 오류가 생긴 세포들이 무장하고 세력을 이루면 판도가 달라진다. 공생의 룰을 어기고, 면역계를 무시하거나 이용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무한확장한다. 이런 세포 집단을 우리는 암이라고 부른다.      


나이가 들수록 오류의 확률과 양은 증가하고 면역시스템은 상대적으로 과부하 상태에 빠진다. 암과 같은 중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세포의 에너지 생산은 줄어들고, 세포 자체의 문제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만성염증은 이런 상태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문제다. 쓸 수 있는 인력은 감소하는데 내부 단속도 안 되니 범죄 발생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가 발암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과 만성적인 스트레스에의 노출이 증가하고, 암의 가족력까지 더해지면 암의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런 불균형의 상태는 우리가 중년이라 불리는 50세부터 증가하다가 도리어 80세 이상이 되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 우리 몸 스스로 노화과정에서 적정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알츠하이머 치매 또한 마찬가지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이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세포가 손상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병이다. 이상 단백질을 제거하거나 축적을 예방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뇌세포의 손상에 따라 감소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상대적으로 발병할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은 있지만, 특별한 원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뇌가 빨리 늙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발견이 되었을 때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의 진행이 되는 암과는 달리 치매는 대체로 천천히 뇌의 기능을 잃어간다. 결국에는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암이 생명을 앗아가는 병이라면 치매는 나를 잃어가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보건소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나를 잃는 것이 더 비극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암과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도우면서 왜 우리는 나이가 들면 이런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일까? 오랜 기간의 진화를 통해 이것을 극복하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이런 것이지 싶다. 진화의 가장 큰 목적은 종의 번식에 있지 장수가 아니라는 점. 과거에도 장수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래 살게 되는 현상은 진화의 시계로 보면 갑작스런 일이라는 점이다. 장수유전자라 불리는 행운을 얻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를 포함한 대다수 현대인은 장수시대의 부적응자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유일한 수능만점자가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뉴스 기사가 있었다. 과학탐구 영역에서 물리와 화학 중에 적어도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지구과학과 생물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 의대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원칙을 만들었을까? 생명을 다루는 의대라면 생물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학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입시의 원칙에 의학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생명은 물리와 화학이란 점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받는 치료를 한번 떠올려 보자. 수술은 물리적으로 병이 있는 부분을 제거하거나 바로 잡는 행위다. 약은 진통제부터 항암제까지 모두 화학물질이다. 몸 속에 들어가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증상을 완화하고 병을 치료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영양제라고 부르는 기능성식품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도 같다. 물리치료는 아예 치료 앞에 물 리가 붙어 있고, 재활운동 또한 물리적 운동을 통해 몸을 치료하는 행위다. 성형외과의 수술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채우고, 잘라내고, 끌어 올리고, 깎아 내는 것 모두 물리적 행위다.     

 

이런 점은 한의학도 마찬가지다.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도구가 다를 뿐이다. 한의학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침과 뜸, 부항 그리고 한약 모두 우리 몸의 물리적 흐름과 화학적 환경을 바꾸는 방식으로 병을 치료한다.  

    

암과 치매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물리와 화학이냐고 하실 분들이 계실 듯 하다.     


암과 치매를 볼 때 너무 드러난 병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바로 병을 둘러싼 화학적 환경과 물리적 흐름이다. 암과 치매가 나무의 병든 열매라면 그 병이 열리게 된 뿌리와 줄기와 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을 제거하는 치료가 썩은 열매를 따내는 것이라면, 병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나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암치료에서는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관해란 단어를 쓰고, 5년 생존율이 아직도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다. 치매를 완치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처럼 암과 치매는 일단 발병을 하면 완치라는 개념이 없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매가 아니라 나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여기에 우리 몸의 화학적 환경과 물리적 흐름이 중요하다.      


몸속 물리와 화학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큰 분야는 바로 산소와 직립이다.      


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며칠,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생존할 수 있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죽는다. 그것은 산소가 없으면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에너지가 없으면 모든 장기의 기능이 멈추기 때문이다. 세포가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온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길다. 말하자면 산소호흡을 하는 세포가 있는 후에 인류도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몸 속 환경에 만성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금방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몸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노력할테니까. 저산소 상태는 저에너지 상태를 의미한다. 장작이 있어도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충분한 연소가 일어나지 않고 화력이 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세포들의 활성이 떨어지고 장기의 기능들이 저하된다. 면역시스템 또한 마찬가지다.      


저산소 상태가 단기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계속 된다면 몸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마치 이미 절반쯤 늙은 것 같은 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당연히 노화에 따른 각종 질병이 발생할 확률은 증가하고 발병하는 시점 또한 빨라질 것이다. 암과 치매 또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유행한 환경에 노출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현대인의 병에 큰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요소들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이로 인해 만성적인 저산소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병의 발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만성질환이나 중한 병에 걸린 환자에게 걷기와 산책과 같은 무리 없는 운동과 숨을 잘 쉬는 연습을 할 것을 권하는 이유다.      


산소가 몸속 화학적 환경에서 중요하다면 인간의 물리적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두 다리로 잘 서고 걷는 직립구조라고 생각한다. 산소를 이용한 에너지 생산을 통해 세포수준에서 진화의 동력을 얻었다면, 인류가 현재와 같은 문명을 이루고 살게 된 것은 직립을 통한 두 손의 자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명의 발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잘 서고 잘 걷는 물리적 흐름을 유지할 때 건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약해진다. 앞서 말한대로 진화의 목적은 장수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직립의 힘이 천천히 약해지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걷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될 것이고, 나에게 맞는 좀 더 효과적인 움직임을 통해 이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동양의 장수와 관련된 처방과 운동이 이런 물리적 구조를 보충하는 계열의 약물과 동작이 주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직립의 구조와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뇌가 우리 몸에서 가장 위에 위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고 걷는 힘이 약해지면 당연히 순환의 힘도 떨어지고, 뇌도 영향을 받는다. 혈관을 통한 혈액의 흐름 외에도 뇌에는 그 청소를 담당하는 림프시스템이 존재한다. 좋은 것을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폐물을 청소해주는 것도 좋은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림프시스템의 순환은 근육이 짜주는 힘과 호흡으로 생기는 압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립의 힘이 약해지고 제대로 숨 쉬지 못하면 이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수면부족과 불면까지 더해지면 나쁜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가 난다.      



많은 치매 환자가 현실 여건상 생활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때론 요양병원의 침상을 떠나지 못하고 생활하다가 삶을 마감한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이란 측면에서도 우울하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도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움직일 때 모든 기능이 원활하다. 내가 만약 요양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면 적절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돕는 것을 선택의 제1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암과 치매는 장수시대, 고령화 사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이고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병이다. 이것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많은 자본과 연구가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또한 획기적인 방법이 나온다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간단하고 실천하기 쉬운 것이어야 한다. 직립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좋은 자세로 걷고, 깊고 충만한 호흡을 하자. 이것만 잘해도 걱정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눈이 내려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