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에 숨은 약초
이야기는 늘 그렇듯 ‘옛날 옛날에…’로 시작합니다. 어느 유명한 양반가에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이 아가씨에게 어느 날 말 못할 고민이 생겼습니다. 가슴에 붉은 종양이 생긴 것입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누구에게 부끄러워 말도 못하다가, 겨우 몸종에게 보여줬는데, 그것을 본 몸종은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딸의 어머니에게 알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증세를 듣고 처음에는 놀라고 걱정을 하다가 문득 자신을 속이고 딸에게 사내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걱정보다 화가 앞선 어머니는 딸을 찾아가 다짜고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욕을 퍼부었고, 딸은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워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가 강물에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 강에서는 포 씨 성을 가진 어부와 딸이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 어부의 딸이 양반집 아가씨를 구해냈습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히던 어부의 딸이 가슴의 종양을 발견하여 어부에게 말하자, 어부는 딸에게 산에 가서 이러이러한 약초를 캐오라고 해서 아가씨에게 먹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종양은 신기하게도 사라졌고, 아가씨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부는 그 약초를 주면서 다음에 같은 병이 나면 다려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가씨는 집으로 돌아와 뜰에 그 약초를 심고는 이름을 ‘포공영’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어부 딸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가끔 아스팔트 도로의 금이 간 틈새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풀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생명의 힘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이 되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들레(포공초)
성질은 평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부인의 가슴에 생긴 종기를 낫게 한다. 곳곳에서 나는데 잎은 거의 씀바귀와 비슷하다. 음력 3~4월에 국화 비슷한 노란 꽃이 핀다. 줄기와 잎을 끊으면 흰 진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두 먹는다. 민간에서는 포공영이라고 한다. 열독을 풀고 악창을 삭히며 멍울이 진 것을 풀어지게 하며 음식의 독을 풀고 체기를 없애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지금도 시골에서 오신 할머니들이 말씀하실 만큼 민들레는 민간에서 널리 쓰여 왔는데, 주로 열이 있고 종기가 나는 등 염증이 있을 때 일종의 천연항생제로 쓰였습니다. 기록에는 맛이 달다고 했으나, 실제로 맛을 보면 제법 쌉싸래합니다.
민들레를 보면 이전에는 꽃이 지고 홀씨를 맺었을 때 불고 놀던 어릴 적 일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민들레 화전과 샐러드가 떠오릅니다. 춘천에 있는 연구소 옆길에는 왕풀님이 민들레 길이라 이름붙인 민들레가 많이 피는 길이 있는데, 봄에 놀러 가면 그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산풀님께서 민들레 잎을 뜯어다가 만들어 주시는 화전과 샐러드를 맛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쌉싸래한 맛과 씹히는 감촉이 좋아서 봄에 떨어지기 쉬운 입맛을 다시 돌게 하는데도 좋습니다.
연구소 옆에 사시는 앵두할아버지는 민들레 꽃대롱을 뽑아서 앵두할머니를 위해 민들레 피리를 불어주기도 하십니다. 어느 해인가 할아버지의 피리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소리도 소리거니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할머니 앞에서 피리를 부시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연구소 분들과 대롱을 뽑아서 피리를 불어봤는데, 꽤 재밌는 소리가 났습니다. 방법은 보리대나 버들가지로 피리를 부는 요령과 비슷합니다.
맘만 먹으면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민들레 피리를 부는 것은 그런 것과는 또 다른 마음의 감흥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단조로운 소리가 나는데도 한번 불기 시작하면 한참을 가지고 놀게 됩니다. 봄이 가기 전에 집 둘레 어딘가에 피어있을 민들레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꽃대롱 하나쯤 뽑아서 홀씨는 입으로 불어 날려주고 대롱으로는 피리를 불어보면, 삶이 지루하거나 재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