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에 숨은 약초
옛사람들이 약초의 효능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사람들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약초의 신으로 추앙받는 신농씨가 독초에 중독이 되어가면서도 여러 약초들을 직접 먹어보고 그 효능을 밝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가 하면, 산신령이 나타나 알려주었다는 설화도 있고, 약초가 자라는 환경이나 향과 색 그리고 맛을 보고 효능을 유추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또한 동물들이 병에 걸렸을 때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특정한 약초를 먹는 것을 보고 그 효능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질경이의 효능은 병에 걸린 말이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는 서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장군 마무(馬武)는 임금의 명을 받고 전쟁터로 향하다가, 오랜 행군으로 말과 군사들 모두 탈진하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군사는 지치고 군량미마저 떨어진데다가, 오랜 가뭄으로 백성들도 뿔뿔이 흩어져 도저히 더 이상 행군할 수가 없게 되자 장군은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아, 돌아가는 길에 병들고 굶어죽는 병사들이 많았는데, 특히 많은 병사들과 군마들이 아랫배가 부풀고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군마를 담당하는 병사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든 말들이 마차를 끄는 것이 불쌍해서 말들을 풀어주었는데, 한 이틀 지나고 나자 이 말들이 병이 다 나아 건강해진 것입니다. 말들이 먹은 풀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 병사는 말이 뜯어 먹는 풀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마침내 잎 모양이 꼭 돼지귀 같은 풀을 찾아냈습니다. 이 풀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나눠주자 병이 모두 나았는데, 풀을 구한 곳이 마침 마차 앞이어서 차전초(車前草)라고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질경이는 잎 모양이 돼지귀와 비슷해서 저이초(猪耳草)라고도 불리는데,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길짱구라고 불렀다 합니다.
질경이는 시골 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한때 무분별하게 뽑히는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차가 다니는 길이라도 그 옆으로 흙이 좀 있는 곳이라면 건강하게 무리지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질경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경이씨(차전자, 車前子)
성질은 차고(평하다고 한다) 맛이 달고, 짜며 독이 없다. 주로 기의 소통이 안 되어 소변이 나오지 않는 증상과 임병을 치료하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눈을 밝게 하고 풍열(風熱)증으로 간의 기운이 위로 치밀어 눈이 충혈되고 뭔가 낀 것 같은 증상을 치료한다.
잎이 크고 이삭이 길며 길가에서 잘 자란다. 소 발길이 닿은 곳에 자라므로 차전이라 한다. 음력 5월에 싹을 캔다. 9~10월에 씨를 닦아 그늘에서 말린다. 약간 볶아 찧어서 쓰는데, 잎을 쓸 때는 씨를 쓰지 않는다.
질경이의 잎과 뿌리
코피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에 즙을 내어 먹는다.
질경이는 성질이 차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주로 비뇨기계 염증을 다스리는데 씁니다. 민간에서 소변 잘 나가게 한다고 해서 질경이를 많이 다려 먹는데, 염증성인 경우에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자신의 병증을 잘 헤아려서 써야 합니다. 또한 질경이씨는 간에 작용해 눈을 밝게 하는데, 이것 또한 간의 열을 다스리는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향약집성방> 같은 의서를 편찬하게 하고,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향약을 비중 있게 다룬 것은, 값비싼 약재를 구하기 힘든 백성들이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를 잘 써서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는 약재들을 구하기가 쉬워지고 좋은 약들도 많아져서 바쁜 사람들이 길가의 풀뿌리 하나에 관심을 갖기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위에 살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일은 단순히 건강을 떠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