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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Nov 01. 2022

시간의 파편 줍기.

휴직을 하면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긴다고 여기는 주변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일정에 따라 조율이 된 시간에 휴직을 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참가 가능할 거라고 여긴다. 그런 약속에 가끔 '시간'이 안된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시간은 시각과 시각의 사이. 시간 여유라는 것은 그런 시각과 시각 사이가 넓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나면 할 일과 할 일의 사이가 너무 촘촘하다. 할 일과 할 일 사이의 시간들의 총합은 일을 할 때 보다 많겠지만 각각의 시간이 너무 파편화되어 있어서 '잠깐 쉬자'라고 생각하면 시간의 파편은 사라지고 만다. 그런 흩어진 시간들은 전체 하루를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모아 보면 꽤 긴 시간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해야 일과 다음 해야 할 일 사이의 여유가 오히려 더 길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다음 할 일까지의 시간은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끝내기 위한 나름의 시간 관리 전략을 써서 애쓰고, 애씀 후에 오는 여유를 달콤하게 즐겼었다. 음악도 더 많이 듣고, 몸에 집중하여 스트레칭하는 시간도 가졌고, 짧지만 집중해서 글을 읽는 시간도 가졌고, 식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수 있었다. 


지금은 짧게 쪼개진 시간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으로 모으기 위한 나만의 전략(?)을 마련했다.


다들 집안일 개미지옥을 한 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청소기만 돌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신호음이 들린다. 건조기까지만 돌리려고 했는데, 건조기 안에 다 마른빨래가 있다. 빨래만 개키고 가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식물들이 목말라 물을 준다. 물을 주는데 창틀에 먼지가 보여 이것만 닦아야지 하고 닦다 보면 아이 하교 1시간 전이 된다. 나가기가 애매한 시간이다. 그냥 집에서 커피나 한 잔 마셔야지 하고 커피를 내린다. 나만의 커피 타임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한다. 선곡... 한다. 그 사이에 커피가 식는다. 식은 커피를 벌컥 마시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찾은 전략이다. 눈 딱 감고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오기!


집안에 어떤 일이 나의 시선을 붙잡아도 일단 나간다. 나가서 나의 마음의 피로를 풀어줄 다른 것들에 일부러 시선을 잡힌다. 언뜻 보이는 가을 단풍에 일부러 시선을 두고 오래 마음을 둔다. 여름과는 다른 가볍고 건조해진 공기가 뺨을 스치면 그 감촉을 느끼고 한껏 들이마셔본다. 가게에서 틀어 둔 음악도 서서 잠시 들어보며 좋아하는 카페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라떼 한 잔을 주문해서 책도 읽고, 읽다가 끄적거리기도 한다. 


이러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적이 있어서 한 시간 정도 미리 알람을 맞춰 둔다. 돌아갈 때는 계절도 바람도 모른 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간다. 집안일 부스터를 작동한다. 집안일의 완성도를 100으로 본다면 모든 집안일을 60 정도의 수준으로만 한다. 봐줄 만할 정도로만 일단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먼저 욕실 변기에 전용 세제를 한 바퀴 뿌리고 환풍기를 틀어 둔다.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닦아 정리하는 데까지 가지 않고 그릇 건조대에 씻어 두고 수챗구멍에 있는 음식물만 깨끗하게 씻어낸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바구니에만 둔다. 흩어진 아이의 물건을 아이 방에 넣어두고 방문을 닫는다. 청소기를 돌리며 눈에 보이는 자국들만 물티슈로 대충 닦는다. 손을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서 전용 세제를 미리 뿌려둔 변기 솔로 변기를 닦고 물을 내려 준다. 


그러고 나서 아이를 데리러 나간다.


이렇게 시간의 파편을 주워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진 날은 하루가 참 가볍고 경쾌하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글쓰기 시간을 갖는 모임에 나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역시 그냥 문을 닫고 나왔다. 돌아가면 다시 집안일 부스터를 써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모든 흩어진 시간들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겠지만 감사한 '일상'임은 분명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을 글로 옮겨 적으며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다음'이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 미안해진다. 


2014년 4월 16일의 아픔이 2022년 10월 30일에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픔이 아픔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지고, 아파할 만큼 아파하고 원망할 만큼 원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날의 기억에 다른 감정은 없고 오직 '그리움'만 남을 수 있도록 아픔이 끝난 후에 원망은 남지 않도록 이겨내고 해결되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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