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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Dec 13. 2022

억압이 없었으니 해방도 없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이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고, 14년만에 정말 쓰게 된 장편소설이라고 합니다.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원래부터 아픈 데가 많으셨던 늙은 어머니까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2년을 서울과 구례를 오가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점차 건강해지셨고, '요즘처럼 아픈 곳이 없던 때가 없다'는 말씀까지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과 구례를 오가는 생활에 지쳐서 구례로 내려와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장례식 이후에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가까이에서 만나게 됩니다. 구례로 내려와 12년을 살며 소설 속 캐릭터로 가정했던 그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비록 허구인 소설이지만 그 아름다움의 '핵심'은 그대로 살려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허구이며 가명이지만 그 아름다움의 '핵심'만은 현실 고증이었던 셈입니다. 


소설과는 달리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이틀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48시간의 기억이 정지아 작가에게는 참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소설에 그 48시간을 포함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자꾸만 이야기가 무거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의 시작을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설정을 했고,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를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첫 문장을 쓰고 나니 나머지 이야기는 술술 적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정지아작가가 쓴 이 책의 원제는 <이웃집 혁명전사>였다고 합니다....

이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창비에서 새롭게 가져온 제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였고, 작가는 이 제목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나의 해방일지>의 후광효과를 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절을 하고 나서 이 제목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아 이튿날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이 제목을 쓰되, 누군가가 제목에 대한 의심이나 비판을 하면 출판사의 뜻이라고 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자전적'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이 책은 '허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캐릭터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 외의 사건들이나 인물들은 빨치산 이야기를 경쾌하고 유머있게 풀어내기 위한 허구인 것이지요. 


정지아작가는 이 책의 흥행에 대해서 유시민작가나 문재인전대통령의 추천의 영향도 있지만 2030 청년들의 열린 태도도 한 몫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빨치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현대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소설을 이데올로기나 색깔론, 정치론으로만 보지 않고 열린 태도로 읽으며 모르는 것은 찾아가며 이야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그들의 태도 덕분에 이 책이 널리 읽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안다는 것, 경험이라는 것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지만, 그 혐오가 어떤 기회로부터의 박탈을 줄 수도 있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회와 자극을 피하면 결국 늘 '살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어찌보면 '꼰대'의 전형이 아닐까요. 빨치산, 종북, 사회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피하기만 했던 세대들과 달리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는 그들의 열린 태도가 '청춘'의 다른 이름입니다.


"청춘은 겁없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노래했던 사무엘 울만의 시에서 나왔던 바로 그 '청춘'인 것입니다. 


제가 읽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아버지 또한 '청춘'이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집에서 점지해 준 여인과 결혼을 해야 했던 봉건주의에서 벗어나고자, 일제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룬 조국에서 여전히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권력의 관성을 타파하고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마음 먹고, 평생 그 신념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을 살아내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어리석고 처연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웃을 향한 '항꾼에'의 마음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노랑 머리 물을 들인 고교 중퇴생부터 옛스승의 아들, 베트남 참전 상이군까지 나타나 화환을 보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기어이 술 한잔을 마시고 그 마음을 보냅니다.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는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청춘과 젊음, 한 시대를 떠나보내는 마음, 세대와 세대를 잇는 애틋함,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 공동체 라는 지금 우리에 필요한 가치들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겪은 일이 아니지만 향수를 느끼듯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옛 동네에서 함께 이름을 불렀던 어른들의 모습을 그리워 하게 됩니다.


제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이지만 이야기 속 아버지는 한 번도 '억압'된 적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해방의 전제가 억압이므로 한 번도 억압된 적 없었던 아버지의 '해방'은 모순이 아닐까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던, 그동안 아버지의 신념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빨치산'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시절로부터 묵혀둔 마음을 가졌던 이들의 해방일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억압이 되어 그 시절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돌부리에 걸린 아이처럼 그 자리에 넘어져 있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비로소 '해방'을 하게 된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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