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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ul 31. 2022

작가와 이야기의 탄생에 대한 책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황금가지(2022)

이 세상에서 책이 모두 사라져 버린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다룬 책으로 널리 알려진 책입니다. <멋진 신세계>나 <1984>와 자주 비교되며 인간의 생각이 통제되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 미디어의 지배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현재를 예견했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은 "작가와 이야기의 탄생"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왜 이야기가 필요한지, 이야기가 없던 세계에 이야기는 어떻게 자생적이고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완전히 없애고, 책을 불태우는 직업인 '방화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책'이라는 물성은 없더라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책 사람들'이 명맥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여행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 자신의 존재를 계승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억'이며, '끓어오르는 말의 소용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몬태그는 방화수에서 '작가'로 탄생하게 됩니다. 


248쪽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기는 길이니라.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한 굴착기를 만들어 역사에 남을 거대한 무덤을 파서 전쟁을 쓸어 넣고 완전히 덮을 정도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249쪽
태양이 높이 솟아 올라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면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외울 것이다. 자신들이 아무 탈 없이 존재해 있고, 자신들 머릿속에 든 것들은 절대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위해. 몬태그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말의 소용돌이를 느낀다. 이 여행을 좀 더 쉽게 만들려면,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날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여정이 좀 덜 힘들게 느껴지려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나니. 그래. 좌절할 때와 다시 일어날 때. 그래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 그래. 모두 다 그렇다.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이기는 길이라는 말은 참 감동적입니다. 세월호의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노란 리본의 약속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산업재해피해유가족들의 모임 이름이 '다시는'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기억하고 바꿔나가리라는 다짐이 담긴 이름입니다.




54쪽
'사회적'이란 말은 사람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것 아니겠어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개는 침묵한 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해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죠. 감옥의 비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듯이 이 교실 저 교실을 네 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녀요. 선생님이 보여주며 설명하는 영화들을 보러 말이에요. 이런 데 함께 어울리는 것이 사회적이라니 도대체 말도 안돼요. 수많은 깔때기들을 들이대곤 커다란 물통의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구 쏟아붓는 거예요. 그리고는 우리더러 포도주를 주었노라고 하죠. 학교에서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이면 누더기처럼 축 처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곧장 침대로 가거나 못된 장난을 즐기기 위해 놀이 공원에 가는 정도지요.  (중략) 요즘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사납게들 대하는지 아세요?


*** 주입식 교육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1953년에 알고 있었을까요? 그때의 모습에서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씨 451>을 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 '교육'과 '작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쓰고 읽을 것인지, 어떻게 읽고 다음 세대로 전달해야 할 것인지, 우리 시대의 책 사람들(book people)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89쪽

불에 타 없어진 하나하나의 책들마다 제각기 한 사람씩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게 누구든지 한 권의 책을 채우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 낸 거야. 책 한쪽 한쪽을 알맹이 있는 글로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알 수 없지. 전에는 결코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



93쪽

한때는 책이란 것도 이곳저곳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았지. 경제적인 부담이 적기도 하고. 영화와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과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중략)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요약, 압축, 다이제스트판, 타블로이드판. 그리고 내용들도 죄나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 갔지.


95쪽

학교 교육도 단순해져 갔지. 규율은 느슨해지고 철학과 역사와 언어는 비참하게 몰락하고 영어의 철자법은 갈수록 변질되어 갔지. 마침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인생은 말초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일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일을 끝내고 나면 그때부터 마냥 놀고 즐기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지. (중략) 옛날에는 사색의 시간이었던 동틀 녘도 형편없이 모욕을 당하게 된 거야. (중략) 인생 자체가 얼음판에서 엉덩방아 찧듯이 볼썽사나운 희극으로 타락해 버렸어. 알겠나 몬태그? 모든 건 그저 펑, 쾅, 우와! 그리고 끝나는 거야.


98쪽

시장이 넓어질수록 논쟁 거리는 점점 더 줄어드는 법이지. 명심하라고! 분명한 자기 특성을 가진 소수 중의 소소, 정말 소수들은 언제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을 거야. 작가들, 사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작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타자기를 굳게 잠가 버리지. (중략) 그 비평가 놈들은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떠들어 댔다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걸 잘 아는 대중들은 재빨리 달려 나가 만화책만은 살아남도록 선처했지.(중략) 처음부터 어떤 규제나 검열  따위는 없었지. 정말 전혀 없었어!


99쪽

우리 전부가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했거든.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게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도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중략) 책이란 옆집에 숨겨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 버려야 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사람들 마음을 파괴하는 거지. 다음엔 누가 박식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 (중략)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그 타당하고 정당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 거지. 정부 겸열관이나 판사, 집행관 같은 파수꾼. 몬태그, 그게 바로 자네고, 나라는 존재야.



102쪽

사람들한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집어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들을 주입시켜야 돼. 새로 얻은 정보 때문에 '훌륭해'졌다고 느끼도록 말이야.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감을 느끼게 될 테지. 그리고 행복해지는 거야. 그렇게 주입된 '사실'들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을 얽어매려고 철학이나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을 주면 안 돼. 그런 것들은 우울한 생각만 낳을 뿐이야.



170쪽

당신을 실수할까 봐 두려운 거요. 겁먹지 마시오. 실수란 놈한테서 도움을 얻기도 하니까. 봐요. 내가 젊었을 땐 난 내 무지를 다른 사람들 얼굴에 마구 던졌소. 사람들은 나를 막대기로 후려쳤지. 마흔이 되었을 즈음엔 더 이상 실수가 두렵지도 않았지만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소. 자신의 무지를 감춘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지. 그 대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거요. 



237-238쪽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문득 깨달았소. 내가 우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하셨던 모든 일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중략) 할아버지는 우리의 일부였고,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행동들도 모두 죽어 버린 거요. 어느 누구도 그분이 하시던 대로 그 일들을 해내지 못하오. 할아버지는 중요한 사람이었소. 난 여태까지 그분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네 손이 닿기 전의 모습에서 네 손으로 네가 좋아하는 식대로 바꾸면 되는 거란다. 그저 잔디를 깎는 사람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차이란 바로 매만지는 데 있지."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오. (중략)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소. 하지만 만약 내 두개골을 파헤쳐 보면 내 뇌 속에서 할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이 파 놓은 도랑을 볼 수 있을게요. 나를 매만지셨으니까. 

*** 가장 감동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부재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하던 일을 똑같이 할 사람이 없고 그 행동들이 죽어 버린 것'이라는 상실의 의미가 깊이 와 닿았습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들이 이 세계에서 다시 재현될 수 없습니다. 다만 제 두개골 어딘가에 깊은 기억의 도랑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과 두개골에 어떤 기억의 도랑을 만들고 있는 중이겠지요. 우리의 소멸도 누군가에게 극복하지 못할, 대체 불가능한 기억과 이야기가 되어 남을 수 있게지요. 영원한 삶이라는 것은 결국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닐까요?





270쪽

그건 본질이라기보다 스타일입니다. 제가 보기엔 <물랑 루즈>라는 영화에는 오늘날 TV나 영화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어요.(중략) 거기엔 0.5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장면들이 4560개나 있습니다. 카메라가 가만히 정지해 있질 않아요. 그러니 당신이 생각할 틈을 전혀 주지 않죠. 그렇게 폭격하듯이 뭐가 쏟아지는데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사람들을 감각으로 폭격하는 거지요. 그게 생각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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