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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Dec 19. 2022

교실생활자의 말들

<너와 나의 점심시간> 김선정. 문학동네(2022)

문학동네에서 출간 예정인 <너와 나의 점심시간>의 가제본을 받았다. 출간된 책의 일부가 담겨 있는 가제본이라서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순식간에 다 읽고 나니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작품 읽기 활동을 했던 <최기봉을 찾아라!>를 쓰신 김선정 선생님의 에세이다. 유보라 선생님이 최기봉 선생님의 제자라는 예감이 들 때 초임 때 맡았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해 혹시 교사가 된다면 그 해가 언제 일지 헤아려 보며 '정신 차리고 처신을 조심해야 할 원년'을 마음속으로 정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 교실을 경험한 김선정 선생님이 쓴 책이라 그런지 학교 속 교실생활자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들이 탁월하여 아동문학임에도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이번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니 더 기대가 컸다. 90쪽 분량의 가제본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단순에 읽었다. 출간본을 다시 읽게 되더라도 단순에 읽을 것 같다.


읽는 동안 나의 교실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 김선정 선생님이 겪은 23년간의 교직 생활은 개인적이고 고유한 이야기인 동시에 교실을 경험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잘 포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김선정 선생님이 이 글들을 쓸 때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심정으로 써 내려간 글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그곳에서 분투하고 있을 동료를 향한 마음으로 쓴 글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와 같지만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어 이제는 어엿한 청소년 혹은 어른, 또는 성장한 어린이가 되었을 아이들을 향한 따스한 마음이 읽히는 책이었다.


교실생활자만이 알 수 있는 교실 생태계에 대한 표현들에 정말 공감을 하며 읽었다. 교육부나 교육청, 부모님은 절대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많은 일들이 교실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대충 넘어가'가 통하지 않는 일들이다.


급식의 순서를 정하는 일, 알고 보면 관계와 감정이 담겨 있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다툼, 체육시간에 나타나는 은근한 서열, 교실 내 캐릭터 차지하기 경쟁, 어울림과 소외, 무리와 혼자, 규칙 정하기 등.


교실생활자라면 누구나 한 가지쯤 관련된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상황 속에서 우리가 놓쳤던 의미와 다른 관점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 섬세함에 감탄하며 동시에 섬세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어쩌면 다시 교실생활자로 돌아간다 해도 가지지 못할 섬세함이라서 한없이 작아진다.


초임 때는 특히 그런 섬세함이 없었다. 교실에 있었지만 교실 안에서 아우성치는 요청들이 아니라 교실 밖의 사람들의 요구와 시선을 생각하며 교실'생활'자가 아니라 교실을 '감시'자의 시선으로 교실을 바라봤던 것 같다. 교실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그냥저냥 땜빵하듯 '처리'하며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는 오대수의 자세로 '내가 제일 힘들어'를 되뇌던 시절이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깨비>에서 은탁의 졸업식에 찾아온 삼신이 담임에게 "아가,  더 나은 스승 일순 없었니?"라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었다. 지금도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잘 몰랐고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랬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내가 했을 것이다. 그 대사를 들었을 때 한 가지 바람은 부디 나와 함께 했던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거쳐온 자신과 가족, 친구는 남되 교사인 나는 그냥 잊히기를 바랐다.


<너와 나의 점심시간>을 읽으며 기억에 남지 않고 잊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첫째, "언젠가 이 밋밋한 학교를 떠나 울퉁불퉁하고 멋진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하면서" 교실에서는 매끈한 법칙의 세계로 인도하기로 '나'라는 자아와 일단 합의한다.


둘째, "교실을 별일 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네!"라고 대답한 대다수의 아이들임을" 잊지 않으며 "모두가 조금 시시하게 지내도록" 교실 생태계를 수호한다.


셋째, "어린이의 마음을 되도록 좋게 해석"하고 그 해석이 사실이 될 수 있도록 잊지 않고 종종 살펴본다.


넷째, "올해의 한 아이"를 만나면 "나만 고민하며 막막한 시간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애를 썼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 아이가 가장 애를 썼다"는 것을, 우리의 견딤은 "결코 헛되고 무용한 견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한다.


카페나 영화에서 장면과 어우러지는 BGM이 흐를 때가 있다. 그 공간과 그 장면을 풍성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배경음악! 그때 들어보고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잊힌 듯하다가 영화 포스터를 만나면 갑자기 몇 소절은 생각 나는 그런 배경음악 말이다.  나도 그런 BGM처럼  기억 저편에 잊힌 듯 있다가 그 시절 사진 한 장을 만났을 때 어렴풋이 생각날듯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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