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꽃 바람 Jan 07. 2023

마음에 바람이 부는 순간

하도리 철새 도래지

철새 도래지에 다녀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철새 도래지 근처로 다가서자 바람이 거세어졌다. 마치 이곳은 새들의 터전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계의 신호 같기도 했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리면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리며 눈을 가렸다. 겨우 목도리와 모자로 바람을 막아 보며 길 가장자리에 섰다.


가장자리에 서서 새들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경계의 신호가 아니라 새들의 비상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날개를 활짝 펼쳐 커다란 가오리 연이라도 된 것처럼 새들은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바람을 따라 날아올랐다. 정신없이 휘갈기는 바람의 길을 새들의 움직임을 보며 읽을 수 있었다.


가장자리에 서서 바람에 맞서는 우리는 결코 갈 수 없는, 가지 못하는 바람의 길을 새들은 날개를 활짝 펼쳐 누비고 있었다. 눈이 시리고 바람 소리에 귀가 시끄럽지만 바라봄을 멈출 수 없었다. 이리저리 그저 눈으로 좇기만 해도 가슴으로 받아내어 흘려보내는 바람의 움직임이, 그 움직임을 통해 기어이 하늘 가까이 오르는 새들의 비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저들 무리에 껴서 하늘과 가까이 바람을 품 안에 안은 듯했다.

그저 눈으로만 새들을 좇은 나와 달리 아이는 망설임 없이 새들의 뒤를 따라간다. 신발이 젖고 바지가 젖도록 겨울 바다 찰방거린다.


말릴 수가 없다. 순식간에 벌어진 그 순간에 잠시 입이 벌어졌다가 입 속으로 들어온 바람이 너무 차서 저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아이의 발이 찬 바닷물에 닿을 때마다 나는 내 발끝이 시려지는 것만 같은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아무렇지 않게 달리고 젖는다.


잠시의 망설임과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젖기로 결심하는 다짐의 순간도 없이, 그냥 바로 행동이 들어선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뛰어든 바다는 어떤 맛이었을까? 어떤 냄새였을까? 어떤 온도였을까?

나는 상상만 할 뿐 근사치에도 가닿을 수 없다. 아이만 했을 때 나라면, 어렸던 나라면 달랐을까.


철새와 바람과 아이와 다시 만날 수 없는 잊었던 과거의 시간에 두고 온 나를 잠시 만나는 시간이다. 크지 않고 깊지 않지만 자연과 함께 한 잠깐의 생각은 늘 마음 어딘가에 상쾌한 바람을 만든다. 그래서 글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피부로 자연을 만나는 일은 늘 마음에 상쾌한 공간을 만든다. 숨이 깊게 쉬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離家樂 ; 삶은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