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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an 19. 2023

시간을 걷는 숲, 숨이 쉬어지는 시간

숲을 걷는다.  숲이 내어 주었지만, 숲이 허락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걷는다. 도시에서는 다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내가 내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새소리, 숲을 가르는 바람 소리만 귀를 채운다.



 처음 걷는 숲길이지만 길을 따라 걸으면 길은 반드시 다른 길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평안하다. 그래서 숲을 걷는 이 시간은 모험은 아니다. 다만 길이 어떤 길로 이어질지,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걷던 길과는 다른 긴장과 설렘이 있다.


새로운 것은 만나기로 다짐한 마음은 싱싱한 눈을 갖게 한다.  길이 내어 주는 풍경에 감탄하고 길이 주는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이며 걷는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며 걷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발 밑 작은 돌부리에 걸리면 시선은 땅을 향한다. 내 발 밑으로  올라온 나무뿌리가 보인다. 단단한 땅과 돌틈에서 물길을 찾아 올라온 그 뿌리 밟으며 ', 지금 내가 걷는 곳이 생명의 한복판이구나'를 느낀다.

으로 뿌리를 내리며 삶을 이어갔던 나무들의 시간과 그 여정의 흔적을 발로 그냥 밟고 지나가버리는 것 같 미안하기도 하다. 곶자왈을 걷는 것은 공간을 걷는 동시에 시간을 걷는 일이다. 긴 시간 흔적인 뿌리를 밟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소복소복 쌓인 나뭇잎들이 거름이 되어 다시 숲의 생명이 되어가는 그 시간을 함께 걷는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곶자왈에 길이 나도록 오고 가며  그 사람들의 시간 속을 걷는다.  


곶자왈을 걸으면 어떤 평화로움에 이르게 된다. 긴 시간 속을 걷다 보면 이 깊은 시간에 비해 더없이 짧은 시간을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갈 나의 시간에 대한 겸손함이 생긴달까.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건, 앞으로 어떤 시련을 겪게 되건 숲의 시간 앞에서는 그저 작은 굴곡에 불과할 것이므로 다 괜찮을 것 같은 편안함이 든달까. 이미 그 정도의 시간은 다 겪어낸 숲이 말 안 해도 다 안다고 온몸에 닿는 공기로 말해주는 것 같다. 처음 온 숲에서 만난 그 공기가 편안해서 자꾸 걷게 된다.


숲에서 만나는 초록도, 햇빛도, 울퉁불퉁한 돌들의 모습도 장대한 시간을 견뎌낸 장한 모습이다. 사람도 죽으면 한 줌 흙이 된다는데, 이런 장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걷는 동안 부유했던 생각 가라앉기도 하고 또 어떤 생각들은 조각들은 모아서 당당한 문장이 되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모진 시간을 살아낸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처럼 깊은 얼굴의 주름처럼 고난의 시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이와 처음 곶자왈에 갔을 때 아이는 몇 걸음 숲에 들어서자마자 무섭다며 숲으로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위해 보기 좋게 만들어 놓은 그 자연과는 너무 다른 자연이라서 그런가 보다. 인간을 배려하거나 고려하지 않았기에 한없이 인간이 작아지는 자연이라서 그랬던 거 같다.


인간과 자연의 원근감이 달라지는 숲이다. 도시에서 한없이 크게 느껴지고 유능하게 느껴져 만물의 영장에 있던 인간이 곶자왈에 들어서면 숲은 만물 그 자체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인간이 작아지는 숲이건만 자꾸 숲을 찾게 된다. 그곳이 우리의 시작이고, 우리의 뿌리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힘들 때 어미 품을 찾게 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 자연을 찾게 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절명의 순간에도 숲에 들어서면 숨이 쉬어진다. 숨이 막힐 때가 아니더라도 숲에 들어서면 내가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숨구멍이 열려 더 깊은숨을 쉬게 된다.


 아.... 이것이 진짜 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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