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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an 23. 2023

속도측정불가시대

청춘에 대하여

6학년 담임을 했을 때 만났던 지혜에게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승의 날에 잊지 않고 손 편지를 보내주던 이이였다. 스승의 날 손 편지는 스승의 날 장문의 문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새해가 며칠 지난 뒤에 보내온 새해 문자가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뜸해지는 소식에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대학에 입학했다는 문자가 왔고, 그해에는 스승의 날에도 새해에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잘 지내고 있으려니 했다. 그러다 문득 대학 2학년 때쯤인가, 집에 다니러 왔다면 전화가 와서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다. 초등학교 때 기억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쇼트 커트에 어른의 느낌이 나는, 몸집도 마음도 부쩍 자라 버린 지혜를 만났다. 지혜는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헤어지는 길에 오랜만에 쓴 손 편지를 나에게 쥐어주었는데 그 편지에는 처음 6학년 담임을 맡아 좌충우돌하며 이것저것 끝맺지 못하고 했던 나의 부끄러운 시도들이 적혀있었다. 나에게 그 시도들은 서툼과 노련하지 못해 부끄러웠던 기억들인데 지혜는 다양한 경험을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대학을 졸업했다면 오랜만에 문자가 온 것이다. 대학 졸업 소식을 전하며 자신이 만든 독립 영화라며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만났을 때 페미니즘 관련 영화를 보고, 공연과 영화 관련된 단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 같다.


영화의 주제는 '속도'였다. 청춘들이 느끼는 세상의 속도와 자신의 속도. 빠름과 느림이라는 감각.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영화 속에는 내가 모르는 지혜의 이야기도 있었고, 내가 모르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세상의 속도와 자신의 속도에 대한 여러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지혜의 모습이 있었고, 지혜가 속한 세계의 사람들이 등장해 속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자신이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상이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래를 향해 제 속도로 내려가고 있고 자신은 위를 향해 최선을 다해 올라가고 있지만 늘 제자리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속도를 내는 일을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뒤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부지런히 걸어가며 가까스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세상과 자신의 속도라고 했다. 


속도측정불가시대-에스컬레이터.


속도는 속력과 달리 벡터값이다. 방향이 필수다. 그런데 세상과 나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 측정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까? 속도를 알기 위한 시간, 거리, 방향을 알 수 없으므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까?


그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내가 지혜만 했을 청춘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가지게 될 미래의 청춘이 생각났다. 미래의 청춘은 어떤 모습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청춘은 이제 없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이 회고하는 청춘에 대한 말들은 현재의 청춘들의 공감이 아니라 종종 분노를 불러온다.


노오력의 배신.

번아웃 세대.

조용한 퇴사.


요즘 청년들은 배신을 말하고, 소진을 말하고, 내세움이 아닌 물러섬을 말한다. 장년층이 느끼는 피로감과 청년이 느끼는 피로감은 그 색깔이 다른 것 같다. 장년층이 느끼는 피로감은 실제 몸을 움직여 생긴 노동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노동의 결과가 주는 뿌듯함의 순간도 있었기에 크게 한숨을 쉬게 하는 해질녘의 색채라면, 청년의 느끼는 피로감은 피로를 넘어선 막막함과 절망 같아서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한 검은색 같다.


머지않아 청년이 될 아이의 청춘은 어떤 모습일까? 푸른 봄의 모습은 아닐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불안하다. 흔들거리며 겨우 청춘에 이르렀는데 다시 또 더 크게 흔들릴 것이 눈앞에 보여 들어서기 버거운 시간이 올까. 열정을 불태워야 하는데 태울 열정을 다 써버려서 싸늘한 마음으로 사회에 나가게 될까. 속도를 측정할 수도 없고, 희망을 말하기도 어려운 청춘의 시간일 것만 같다.


이런 걱정을 하는 시간에도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별 것도 아닌 농담에 깔깔댄다. 그래, 내가 대신 겪어줄 수 없는 시간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할 시간일 것이다. 지혜가 고민하고 흔들리며, 그래도 애를 쓰며 지나가는 시간을 아이도 애쓰며 건너갈 것이다. 


애쓰고 땀 흘리고 눈물을 쏙 빼다가도 지금처럼 별 것도 아닌 농담게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뭔가가 손에 잡힌 것 같아서 눈빛을 반짝이는 순간도 있기를... 너의 청춘은 너의 것이니, 아무에게도 뺏기지 말고 네가 그 청춘을 온전히 너의 것으로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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