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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r 13. 2023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기

자기 돌봄 클럽에서 "언제 나를 돌보는 느낌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로 태어나 부모의 절대적인 돌봄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울음과 칭얼거림 밖에 없던 그 작은 아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그 아이를 지켜내야만 한다는 생애 첫 부모됨을 경험하는 부모의 돌봄으로 성인이 됩니다. 


가진 것이 너무 부족해서 미안하고, 아는 것이 너무 부족해서 좌절하고,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내가 울고 있을 때 웃고, 내가 잠시 숨을 돌릴 때 울음으로 나에게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그 준엄함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돌봄과 보이지 않는 많은 돌봄들, 그리고 좋은 돌봄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손길이 있었기에 아이는 다른 사람의 돌봄이 아닌 스스로의 돌봄으로 나아가야 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언제 나를 돌보는 느낌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 성인은 돌봄을 떠난 '독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를 돌보는 느낌을 받는 순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집 밖을 나가 걷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엄마"라는 부름으로 당연히 '나는 엄마'인 상태로 보냈던 시간들에서 다시 '나'로, 누구의 부름으로 규정되는 내가 아닌 그냥 내가 인식하는 '나'로 스위치를 변환하는 순간입니다. 


저녁을 챙겨 주고 남편이 퇴근하면 밖으로 나옵니다. 공기가 포근해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코끝이 쨍 해지는 쌀쌀한 날도 좋습니다. 몸에 지닌 것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은 피로감이 들 때까지 걷습니다. 그러다가 음악도 끄고 아무 소리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걷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도 고귀하고 아름답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나는 살아 있을 필요가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냥 '나'로 사랑도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나'로 

공백과 없음과 부재의 시간 속에 잠시 '나'를 놓아두고 싶기도 합니다. 


아주 짧지만, 때로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계획보다 일찍 집으로 들어와 다시 '엄마'로 황급히 돌아와야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시간에 나에게 오리라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시간에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의 나에게 좀 더 괜찮은 내가 되도록 힘들고 지칠 때도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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