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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Feb 06. 2023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토요일에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종이를 넘기며 보았던 평면의 주인공들이 한 명씩 등장하며 관객을 향해 걸어오는 시작 장면에서 벌써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송태섭,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강백호가 이노우에의 손에서 한 명씩 그려져서 관객을 향해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다섯 명이 한 화면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다가 색깔이 입혀지며 종이 만화에서 컬러 애니메이션으로 독자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이미지 출처: mlbpark.donga.com


관객들이 놀랄까 봐 어떤 완충지대를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만화를 보며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읽었던 과거 나의 상상이 재현된 것 같아서 뜨거워졌습니다.


체구도 걸음걸이도 다른 주인공들이 한 곳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에 뭔가 웅장해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팀이지만 각자의 서사를 품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플레이를 하는 주인공들의 성장을 보며 [슬램덩크]에 빠져들었던 '10대의 나'의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영화를 보는 '40대의 나'의 눈에는 '10대의 나'가 보았던 성장의 바탕에 있던 각자의 '고난'과 '슬픔'이 보였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산왕공고 VS 북산고의 경기 장면을 풀어냅니다. 송태섭은 3학년 채치수, 양준호, 정대만 1학년 강백호, 서태웅 사이에 홀로 2학년으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만화에서는 우승을 꿈꾸지만 선배들의 핀잔을 들으며 열정을 멸시받던 3학년에도, 다시 북산고의 재기를 꿈꾸며 희망찬 시작의 바람을 일으키는 1학년에도 속하지 못한 캐릭터입니다. 그런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더 퍼스트'란 이름의 '더 라스트'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린 송태섭이 겪어야 했던 연이은 상실,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야 했던 책임감과 죄책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슬픔을 품은 채로 다시 나아가게 한 열정. 그리고 그를 이끌어준 운명 같은 만남.


10대의 송태섭은 어른 못지않은 삶의 굴곡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섰다가, 다짐하고 다시 다짐을 번복하고, 체념했다가 희망을 품기를 반복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시간 위에서 흘러가는 모습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나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는 보편성은 변하지 않은 채, 개인의 서사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고유성을 지니기 때문에 각자 존재의 이유가 됩니다. 예술은 그런 고유성을 일깨워줍니다.


다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더 뛰어나거나 더 부족한 것도 없다.

자기 앞의 삶에 초라해지지 말자.

나는 나로 이미 충분하다.

나라는 고유성은 이미 완성형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은 어떤 말들로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며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을까요?


https://m.blog.naver.com/dashlady1/221031967391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부상 때문에 움직이기조차 힘든 강백호는 벤치를 지키게 됩니다. 영감님은 이미 강백호의 부상을 눈치챘지만 강백호의 성장을 보고 싶었기에 코트로 부르지 않았다며 그 결정이 감독으로서는 후회할 일이 될 뻔했다고 말하며 보낼 수없다고 합니다. 그 순간 땀을 뻘뻘 흘리며 강백호는 "자신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는 말로 감독을 설득하고 코트로 나갑니다.


깊은 지하에 묻혔던 '영광의 시대'라는 말이 발굴되어 빛을 내는 순간입니다. 풋내기 강백호의 입에서 '영광의 시대'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의식의 흐름을 상상해 봅니다.


승리의 영광, victory라는 낱말에 연결되어 있던 말일까요?

순간이 아니라 '시대'라고 했으므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영광은 계속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일까요?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를 '국가대표'시절로 가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트 위에서 계속해서 '승리'만을 생각했던 강백호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걸까요?


강백호가 "난 지금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필립 라킨의 <나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날들은 우리가 사는 곳.
그것은 오고, 우리를 깨우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그것은 그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있는 것:
나날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영광의 시대도 결국 나날들에 있는 것이겠지요.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나의 나날들이 나의 영광의 시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써 봅니다.

발굴하는 마음으로, 나날들에 흩어진 영광을 찾아보겠습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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