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효과> 피터 로번하임. 교양인(2022)
피터 로번하임의 [애착 효과]를 읽고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정신과전문의 문요한님이 진행하는 <2023 자기돌봄클럽>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널리스트인 피터 로번하임이 '애착'에 관심을 가지고 대학과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고, 실제 진단 장면을 관찰하기도 하고, 내담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본인의 애착 유형을 알아보기 위해 성인애착검사를 받고 '두뇌패턴'을 검사를 받았던 과정까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애착 유형은 자기 인식(회피축)과 타인인식(불안축)을 기준으로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애착과 연결되는 양육, 연애, 결혼, 직업, 스포츠의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어 있고, 더 나아가 애착을 경험하는 영적인 내용도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애착'은 모든 관계의 치트키라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연구가 인상적입니다.
스포츠는 일종의 탐험이라 할 수 있으며 선수의 경기력은 애착 유형과 경쟁적인 스포츠가 제시하는 도전에 맞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스포츠는 관계의 활동이다.
<애착 효과> 262쪽
가장 성공적인 조는 모두 안정 애착 유형으로 이루어진 조가 아니라 애착 유형이 고르게 섞인 조라는 점이었다. 안정 애착, 불안 애착, 회피 애착 유형이 모두 있을 때 결과가 가장 좋았다.
<애착 효과> 258쪽
이 부분을 읽으며 [슬램덩크]가 떠올랐습니다. 완벽하게 불안해 보이는 북산이 낸 성과는 그들이 애착 유형이 고르게 섞인 팀이어서 아닐까요? 선수들의 애착 유형을 나름대로 대입해 보니 캐릭터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감님이자 감독님이 바로 그런 애착 유형의 장점들을 고양시키는 코칭을 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대체로 체력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할 가능성도 높다. 체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절제력이 높다.(265쪽)"
"안정 애착 유형은 실패의 두려움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266쪽)"
제멋대로인 강백호가 '선배'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안경선배 권준호와 한나가 유일합니다.
권준호는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믿음을 받았던 안정 애착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준호는 주로 벤치를 지키다가 결원이 생길 때 코트에 투입되는 6번째 선수입니다. 하지만 벤치에서 한나와 함께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팀원들을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느껴지는 샴푸향처럼 북산이 흔들릴 때마다 변하지 않는 '초심'의 향기가 되어 주는 권준호는 북산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코트에서 뛰는 5명을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가 권준호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단 1명의 동료를 가져야 한다면, 저는 권준호를 저의 동료로 택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100번을 넘어지고 실수해도 한결같이 100번을 손 내밀어 줄 것 같은 변하지 않는 믿음의 권준호는 '애착'이라는 렌즈로 보았을 때 가장 빛나는 캐릭터네요.
"회피 애착 유형은 관계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혼자 하는 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체육관에서 몇 시간씩 운동하는 근육질 선수들 중 일부는 회피 유형일 수도 있다(265쪽)."
일단 북산의 선수 가운데 가장 우람한 체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은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낮고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회피 애착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어려워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런 채치수의 리더십은 때로는 고릴라처럼 독선적이고 강압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가슴을 치며 존재를 과시하는 채치수라는 주장은 북산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됩니다. 그와는 대조적인 여동생 소연이와 그런 소연이를 대할 때 달라지는 따스한 오빠의 모습은 채치수라는 인물을 훨씬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데 익숙한 회피 유형은 위험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최상의 탈출 경로를 찾아낼 수 있다(255쪽)."
서태웅은 위기 상황에서도 경기를 즐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패스보다는 드리블을 하여 득점으로 연결하는 플레이를 구사합니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말수도 적습니다. 심리묘사도 적고 개인적인 서사도 알 수 없는 그저 농구에 대한 집념으로 표현됩니다.
경기 중에 한쪽 눈을 다친 상황에서도 자유투를 수백 개씩 던지며 실제 경기에서는 눈을 감고 자유투를 성공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냉혈남의 모습과 수려한 외모로 소연이를 비롯한 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에 대해 반응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오직 농구, 승부, 성장, 몰입이라는 다른 사람과는 분리된 어떤 세계 속에 있는 듯한 서태웅의 존재는 북산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됩니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서태웅이 있기에 플레이를 지켜보는 독자와 관객들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스포츠의 정신을 잊지 않고 함께 몰입하고 뜨거워집니다.
"불안 애착 유형은 통증의 역치가 낮아서 안정 애착이나 회피 애착 유형에 비해 실제로 통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265쪽)."
"불안 애착 유형은 애착 인물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란 확신이 부족해 '자기 보호를 위해 실패를 회피'하며 너무 큰 위험은 외면한다(266쪽)."
정대만은 머리를 자르기 전의 정대만과 머리를 자른 후의 정대만으로 나뉩니다.
정대만은 연습 경기 도중 무리하게 채치수를 제치려고 하다가 무릎 부상이 왔습니다. 병원에서 한 달을 재활하면 다시 경기를 뛸 수 있다고 했는 재활 기간을 참지 못하고 무리하게 경기에 복귀했다가 부상이 심해져 장기간의 재활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농구는 그냥 취미였을 뿐"이라며 자신을 속이며 농구를 그만두고... 단발머리 정대만으로 지냅니다.
왜 정대만이 농구를 그만두었는가에 대한 확실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내로라하는 고등학교에서도 스카우트를 하고 싶어 했던 중학교 시절 정대만은 '안 선생님'을 보고 북산고에 입학합니다.
그런데 안 선생님은 오직 정대만에게만 애정을 쏟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가능성을 가진 채치수에게도 애정을 보입니다. 그것에 질투를 느껴 연습 경기에서 채치수를 압박하다가 부상을 당하고, 채치수가 경기를 뛰며 안 선생님의 눈에 드는 것이 질투가 나서 다시 무리하게 경기를 뛰다가 부상이 더 커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상까지 당하고 긴 재활이라는 고통을 견뎌야 했던 정대만은 "농구는 취미"라면 자신을 속이고 더 크게 실패할까 봐 미리 포기하는 불안 애착 유형의 모습을 보여주며 농구를 그만둬 버립니다. 잘못된 자기 보호의 모습입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인 농구를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상처받았던 정대만의 애착은 믿음과 도전과 사랑의 힘으로 회복되고 다시 북산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북산고 농구부와의 싸움에서 안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무릎을 꿇고 "안 선생님.. 저 농구가 다시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정대만의 모습은 그가 왜곡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과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북산에 돌아온 정대만은 위기의 순간마다 3점 슛의 치트키를 발휘하며 북산을 구해냅니다. 안 선생님은 그런 정대만에게 그가 그토록 원했던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냅니다.
정대만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가 되어 북산에 돌아옵니다. 2년의 공백 기간 때문에 후반에 가면 음료수를 따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어김없이 3점 슛을 넣으며 자신이 코트 위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정대만의 불굴의 정신은 완전한 포기를 해 보고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페이소스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절뚝거림입니다. 위기의 순간의 각성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바윗돌을 다시 기어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같은 정대만의 모습을 보면 이젠 끝이고 완전한 절망이라도 느끼는 순간에도 "아직 끝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한 줌의 에너지가 끌어 오르는 것입니다.
" 성장기에 교사나 멘토, 감독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거나 혹은 안정적인 연인이나 배우자와 건강하고 오래가는 관계를 맺게 되면서 불안정 애착 유형이 된 사람들이 서서히 안정 애착으로 변해하기도 한다. 이를 획득된 안정애착이라고 부른다.(18쪽)"
송태섭에 대한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는 정대만과의 폭력 사태입니다. 성격상 꼭지가 돌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경향이 있어서 정대만의 앞니를 깨트리고, 턱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경기 중에도 무리하게 골대 밑에서 패스를 시도하다가 막히고, 상대의 더티 플레이와 트래시 토크가 이어지면 금방 이성적인 부분이 한계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죽은 형을 대신해 집안의 주장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농구를 하는 과정에서 형과 매번 비교를 당함과 동시에 그저 그런 선수라는 평가만 받으며 좌절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좌절을 어린 송태섭은 혼자 감당하려고 합니다. 포커페이스로 감정을 감췄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살아남은 게 형이 아니라 저라는 게 미안했다"라고 느끼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처에서 송태섭을 구해내는 인물이 '한나'입니다. 한나와의 오래된 서사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도 등장합니다. 상처를 감추고 여유 있는 척 해온 송태섭이 사실은 코너에 서서 마지막 가드를 올리는 링 위의 선수임을 알고 있는 한나는 손바닥에 "넘버원 가드"라고 마커로 써 줍니다. 자신의 존재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불안에 내몰린 송태섭의 존재를 손바닥에 적어 주고, 송태섭은 그 말을 주먹을 꽉 주며 놓지 않습니다.
송태섭에게 한나는 단순히 짝사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전 기지'인 것입니다. 겉으로 자신을 한껏 부풀리며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위장술을 쓰는 사람에게 너에게 필요한 건 위장술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말하며 그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벙커가 되어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한나가 있어서 송태섭은 다른 누구(이를 테면 죽은 형)도 아닌 자신의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저에게 '애착 유형'은 단단한 이론은 아니지만 충분히 좋은 관점을 주는 세계였습니다. 사람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16개의 유형으로, 4개의 혈액형으로, 4개의 애착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애착 유형은 저에게 한 사람의 행동의 출발점이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지,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사람은 얼마나 약하고 또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혼자가 아니라 연결되고 이어지는 사람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알려주는 유용한 관점입니다.
사람의 행동에 대한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난폭한 행동인지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고 싶을 때 마다 <애착 이론>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이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애착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의 통찰을 통해서, 어떤 대상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