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친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더 쓸쓸하고 외로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분명 대화가 오고 갔지만 마음은 주고받지 못한 것 같은 답답함이 생겨서 마음의 문이 오히려 쾅 닫혔던 순간들이요. 내 것을 흘려보내기만 하고 돌려받은 것이 없어서 뭔가 에너지가 더 소진되어 버린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나서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로 쉽게 옮겨가는 현상입니다. "라떼는"은 꼰대의 화법이변서 어찌 보면 대화의 나르시시즘의 화법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럴 때 이렇게 저렇게 했어."
상대방의 불안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그 이야기가 잠자고 있던 나의 불안의 코털을 건드려서, 상대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더 중요하고 커 보여서,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녀와 부모의 대화에서도 이런 주도권의 전환은 쉽게 나타납니다. 아이의 호소로 시작해서 아이의 짜증과 문 '쾅'으로 끝나는 대화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아이는 자신의 문제와 힘듦을 호소하며 위로받고 싶어 이야기를 꺼내지만, 부모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커지기도 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눈물에 공감을 하기보다는 금세 자신의 불안에 몰두하게 됩니다. 아이는 이것을 반복되는 뻔한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문 '쾅'으로 대화를 강제 종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그냥 나만 외치는 대화를 하고 나면 진이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대화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신나게 떠들고 나서 집으로 돌아갈 때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후회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참 편한 상대입니다.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덮어버릴 수 있는 참 안전한 친구입니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책을 만날 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책을 만날 때, "뭐야? 별론데."하고 덮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나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언어화해서 정갈하게 보여주는 책을 만날 때는 그 부분을 읽고 또 읽으며 책과 나의 마음을 보듬어 주면 됩니다.
아직 편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꺼이 대화의 나르시시즘을 벗어던지고 서로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셨다면 책은 어떠세요? 책은 시간 약속을 할 필요도 없고, 바쁘면 약속을 취소해도 되고, 만나자고 하면 언제 어디서나 그저 마음을 열어주는 그런 편안한 친구입니다.
나를 채워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나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