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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Apr 20. 2023

닮은 얼굴; 시간을 담는다.

다섯 살이 된 조카의 얼굴에서 동생의 얼굴이 자주 보인다. 분명 다른데 어떤 행동을 하거나 특정 표정을 지을 때 참 닮았다. 과거의 나는 나의 얼굴보다 사실 동생의 얼굴을 더 자주 보았다.


거울을 자주 보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거울을 볼 이유가 없었다. 그 때 찍어둔 몇 장의 사진 외에는 나를 볼 기회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눈으로는 '나'는 볼 수 없으므로 기억 속에도 몇몇 감정들과 사건들은 남아있지만 그 현장의 내 모습은 없다. 하지만 동생의 얼굴은 매일 봤다. 또렷이 보았다. 나의 모습보다 더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 속 동생의 모습을 조카가 가지고 있다. 


조카의 얼굴에서 어릴 적 동생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학교에 막 들어가기 시작한 그 때의 기억들이다. 


밥을 입에 물고 도통 삼키지 않던 아이. 왜 밥을 입에 물고 삼키지는 않고 사탕처럼 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던 아이. 한 번 울면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 그래서 나중에는 왜 울었는지 이유를 잊게 만드는 아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내리 30분은 울던 아이. 엄마의 눈으로 보니 참 키우기 어렵고 마음이 많이 쓰였을 막내 딸이었다.


조카가 그렇다.  밥을 입에 물고 동그란 사탕처럼 만들어서 혀 위에 밥이 있는 채로 말도 잘한다. 밥을 삼키고 말해야 한다고 지청구를 들어도 "아, 알겠어요." 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대답을 하지만 밥은 삼키지 않는다. 물을 먹여도 물은 마시고 밥은 그대로 입 안에 있다. 참 재주다. 


울기도 잘 운다. 어렸을 때 동생의 별명은 '악살'이었다. 얼마나 '잘' 울었는지 작은 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앵~앵~" 울기는 우는데 본인은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오래 울었다고 한다. 듣는 사람들은 애가 타지만 본인은 전해 애쓰지 않는 울기의 장인이었던 것이다. 


조카의 우는 모습도 그 때의 동생을 떠올리게 한다. 그 표정과 얼굴마저 그 때의 동생을 참 닮았다. 그런 조카를 보며 나도 어릴 적 그 때로 잠시 돌아가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의 이동이 참 야릇하다. 엄마가 나를 보았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막내 이모를 닮은 사촌동생을 보며 그런 느낌을 가졌을까?


누군가를 닮는다는 것은 그저 외모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마저도 담고 있는 것 같다. 동생을 닮은 조카의 얼굴에는 그 때의 나와 동생의 시간이 담겨 있다. 조카나 손주를 바랄 볼 때 촉촉하고 애잔해지는 눈빛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이 담고 있는 그 시절의 시간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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