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를 위한 변명
아들을 둔 보호자들 사이에 흔한 괴담이 있다. 등교 첫날 필통을 보내면 그 필통은 수료하는 날까지 다시 볼 수 없다는 이야기.
그럴 리가는 그럴 수가로 그리고 곧 그렇지가 되었다.
아들에게 필통 1호를 보냈는데 한 번도 가방에 그 필통을 가지고 온 적이 없다. 필통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교실에 있다고 하였다. 가끔 가방 속에 처음 보는 연필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연필이 없어서 교실에 있는 연필을 썼단다.
기다릴 수가 없어 필통 2호를 보내면 그 2호도 들고 오지 않았다. 제발 집으로 필통을 가져오라고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며 가져오지 않았다. 혹시 잃어버린 거냐고 물으면 학교에 있다고 말했다.
대망의 수료식 날. 1년 동안 집을 나갔던 외로운 탕아, 필통이 돌아왔다. 웬일이지 나중에 보낸 필통 2호가 아니라 처음에 보낸 필통 1호가 돌아왔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중사도 아닌데 새까맣게 되어 있고 어딘지 모르게 살이 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만 한 것도 너무나 기특한데 지퍼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 대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퍼는 열린 채였고, 필통 안에는 지우개 가루, 부러진 연필심, 가까스로 쏟아질 위기를 모면한 뜯어진 지우개 하나만 남아 있었다.
필통이란 무엇인가?
연필이란 무엇인가?
지우개란 무엇인가?
다소 철학적인 질문이 스쳤지만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지우개를 라이언 일병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요리조리 살펴본다.
한 쪽면에서는 라이언 일병이 벙커로 사용했을 법한 구멍이 가운데 깊이 파여있다. 아마 수업시간에 열심히 연필로 파낸 것 같다. 다른 쪽면에는 아주 뾰족한 연필심으로 찍어놓은 작은 점들과 형광펜의 흔적이 보인다. 가장자리는 손톱으로 뜯어낸 듯한(설마... 치아로 뜯어낸 것은 아니길 바라는) 자국들도 보인다.
아이는 수업시간에 이 지우개가 얼마나 필요했을까. 수업 시간에 주어진 자유라고는 손을 들어 발표를 하거나 문제를 풀거나 책을 읽는 것뿐인데 그 지루한 시간 속에 이 지우개가 얼마나 필요했을까.
연필로 쿡쿡 쑤셔도 재미있고, 가끔 손톱으로 조각조각 뜯어내며 가루로 만들어도 10분이 훌쩍 지났겠지. 찌르고 뜯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움직임도 크지 않아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실컷 집중할 수 있었겠지.
나도 그런 지우개들을 많이 알고 있다. 청소를 하다 보면 주인을 잃은 그런 지우개가 많다. 지우개를 감쌌던 종이는 당연히 없으며, 뚫리고 뜯어지고 연필에 볼펜까지 잔뜩 묻어있는 지우개. 아무리 주인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직은 '지우개'인 그런 지우개. 교실 한편 바구니에 먼지와 함께 담겨 있다가 다시 누군가가 빌려 쓰고 다시 교실 바닥에 나뒹굴게 되는 그런 지우개들.
처음엔 요즘 아이들은 학용품 귀한 줄을 모른다고 여겼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지우개가 왜 이래?"
"아, 심심해서 그렇게 됐어. 연필로 쪼금 이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가더라고. 미안해."
지우개는 지우는 용도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간 교실서 본 숱한 지우개들의 쓸모를 알게 되었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였는데, 물어보면 알 수 있는데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교실에서 만났던 지우개들과, 지우개를 찌르고 쪼개어가며 더딘 시간을 버텨냈을지도 모를 아이들을 오해해서 미안하다.
내가 수료식에 만났던 라이언 일병은 지우개가 아니라 아이인지도 모른다.
별 탈 없이 1년을 잘 보내고 살아 돌아왔구나!
장하다. 잘했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