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김민섭 외
49-50쪽 김민섭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타인의 세계 안에서 타인의 언어로 자신이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두려움을 준다. (중략)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어를 가진 개인이라는 존중과 두려움이 함께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나의 몸에 새겨진 글은 언제든 나의 언어로 옮겨 적을 수 있고 지금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언젠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작가라기보다는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존중받는 개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불현듯 떠오르는 세종대왕이다. 아마 세종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 같다.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것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읽고 쓰는 삶을 준다는 것은 온전히 독차지했던 인간다움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이 좋은 것을 나의 백성들이 누릴 수 없다니...
50쪽 김민섭
나는 모두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누가 읽어 주겠느냐고 그것을 옮겨 적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당신만이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당신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를 이 문장에서 만났다. 이미 몸에 새겨져 있는 일상 가운데 오직 나만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을 남기고 싶다. 계속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일상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몇 가지는 끌어올려 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65쪽 문보영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서 기억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에 유리하므로 사랑에는 불리하다고. 사랑에 빠지면 모조리 글로 써 버린다.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적당히 알아서 휘발될 과거도 기록이라는 행위로 인해 자연스럽게 박제되어 버린다. 기억에 방부제 처리를 해놓고, 매일매일 꺼내 읽는 식이다.
*** 기억에 방부제 처리를 하는 방법은 기록이구나.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많은 순간들이 적당히 알아서 휘발되어 버린 까닭은 기록하지 않아서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적당히 휘발되어서 다행인 '절대 잊지 못할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꺼내 읽지 않아도 적당히 알아서 내 머릿속 지우개가 지워준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하게 발견된 기록들은 과거의 나를 참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의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72쪽 오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책방 오늘', 속 공중전화 부스에선 번호를 누르면 수화기를 통해 작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남아 있어서 실로 다행인 목소리들. 그중 나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다. 내가 시인이 된 이유다.
81쪽 정지우
작가에 대해 쓰고 나서, 작가의 말을 쓴다는 것이 약간 묘한 기분이 드네요. 작가에 대한 노래 한 곡, 에픽하이의 <백야> 남길게요.
***에픽하이의 노래를 가끔 듣기는 했지만 가사들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다시 살펴보니 랩이 아니라 'epic'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사를 쓰고 리듬을 타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굉장히 짜릿할 것 같다!
김혼비 207쪽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하나둘씩 사라지면 아무도 마중 오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체에 걸러진 알갱이들처럼 현관 앞에 남겨졌다. (중략) 그렇게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다니면 괜히 신이 났고, 평소에는 금기시되는 어떤 것을 상황에 맞게, 필요에 의해, 내 의지대로 선택하는 융통성을 발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열 살도 안 된 나에게 그런 융통성은 '어른의 것'이었으므로 어른스러운 행동을 한 것에 조금 우쭐해졌다.
*** '체에 걸러진 알갱이들처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표현은 어디서 나올까? 체에 걸러진 알갱이들은 체를 통과하지 못해 쭈뼛거리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않은 여묾이라는 자랑스러움도 한 켠에 있었을 것 같다. 걸러졌다는 위기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여묾을 생각하니 빗 속을 뛰어든 아이들의 당당함에 나도 매료된다. 내가 마치 그 빗속에 있었던 것인 양 하나의 구절이 나의 마음에 들어와서 멋대로 내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김혼비 294쪽
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 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 김혼비 작가의 표현이 참 좋다. 커피로 삶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술은 마시지 않는 나에게 술은 형용사는 아니고... 부사 정도? 있으면 형용사를 꾸며주기는 하지만 형용사 정도의 중요성이나 임팩트가 있지는 않다. 가끔은 꼭 필요하지 않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술인지라 부사라고 해야겠다.
오은 308쪽
정은 작가 <커피와 담배> 책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여럿 있었다. 가령 이런 것.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커피는 내게 환대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내 테이블에 커피가 놓이면 나는 잠시 동안 그 도시에 받아들여진 느낌이 들었다." 커피는 여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기호식품이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그것을 쫓고 쫓기는 갈구 했다.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털어 넣은 뒤, 카페인을 충족시켰으니 얼른 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았다. 커피는 매일 "환대의 자리"가 아닌 '환멸의 자리'에 놓였다.
*** 나도 커피를 참 좋아한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나 글도 참 좋아한다. 누군가는 동사로, 누군가는 환대로, 또 누군가는 환멸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 세 잔의 커피를 모두 마셔본 것 같다. 아니 마셔보았다. 어떤 날의 커피는 날 움직이게 했고, 어떤 날의 커피는 나에게 넓은 공간과 깊은 시간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종이컵에 담겨 다 식은 커피를 털어 넣듯 마시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구겨 던지며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김민섭 323쪽
누군가는 타인의 작은 비난에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던 그 쓸 데 있는 일을 직접 나서서 와르르 무너뜨리고 만다. 그러고는 '이건 정말 엄청난 계획이 있었던 건데 너 때문에 다 망한 거야!'라며 아주 오랜 시간 그를 미워하며 지낸다.
***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내가 누군가의 쓸 데 있는 일을 비난으로 무너뜨린 적은 없었는가? 혹시 내가 누군가의 비난으로 나의 소중한 일을 직접 나서서 무너뜨려 놓고 다시 원망만 하며 다시 쌓아놓을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무너뜨린 사람이 다시 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쌓아 보았던 거니까 두 번째로 쌓을 때는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김민섭 324쪽
지금의 나는 몇 가지의 쓸데없는 일이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작가로서의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2017)와 김동식 소설집 기획(2018)이었다.
김민섭 325쪽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문체와 작법과 속도로 글을 써 나갔다. (중략) 그는 독자들의 댓글을 보면서 맞춤법부터 문체, 작법까지 모두 배웠다고 했다.
***김민섭을 통해 김동식을 만났다. 매우 흔한 주인공의 친구이거나 사돈의 팔촌 같은 이름은 김동식 작가는 흔하지 않은 소재로 오늘의 주제를 담아내는 작가였다. 소설집이 무려 10권까지 출간되었다니 그의 책을 그가 글을 쓰는 속도보다 빠르게 읽어 내려가지 않는다면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남궁인 344쪽
연재 내내 '그 쓸데없는' 짓을 하던 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 쓸데없는' 짓을 지켜보던 어머니에게 생각이 가닿았다. 모든 글은 결국 어머니에게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은 354쪽
나쁜 일에 관한 것이라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다. 슬픈 일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아픈 일은 그런 나를 다시 제자리에 눕힌다. 그런 기억은 으레 난데없이 날아든다. 나의 삶의 중요한 지점에는 늘 쓸데없음과 난데없음이 있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쓸데없이와 난데없이의 수미상관이 인상적이다. 라임도 있다. 쓸데없음과 난데없음은 꽤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나란히 있다. 일상에서 쓸데없음과 난데없음이 나란히 목격된다면 정말 큰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아니면 엄청 크게 화가 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