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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an 31. 2022

밭에서 나고 자란.

ode to my family

     돌이켜 보면 난 항상 식물과 함께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식물과 밀착된 삶이 예견되어 있었다. 부모님의 생업이 밭에 씨를 뿌려 그 씨앗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여 그 씨앗보다 더 좋은 값에 열매를 파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어린아이의 일상과 취향보다 늘 위에 있던 다섯 가족의 생계였다. 좋아하는 TV를 보다가도 얄궂은 소나기라도 내리면 허둥지둥 바깥으로 나가 밖에 세워둔 깻단에 비닐을 덮어야 했다. 어린 양배추 모종을 심고 나면 부모님은 2~3시간마다 일어나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의 위치를 옮기기 위해 밭으로 향했다. 알람도 없던 그때 고된 일을 마친 몸을 어떻게 일으키고 밭으로 향하고 다시 선잠을 주무셨는지 지금은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때의 어린 나에게 그런 삶은 옆집에도 뒷집에도 앞집에도 있는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다.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한 지역적 특징이 신의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사계절 내내 약속된 노동이었다. 한 겨울에도 열매를 맺는 식물이 있었으며 추위에 손이 곱아가며 수확해야 하는 밭작물이 있었다. 초겨울에는 밭에서 불을 피워 손을 녹이며 해가 이슬을 말려주기를 기다렸다가 수확을 하기도 했다. 해가 길어진 여름에는 일이 길어졌다. 식물의 주기에 맞춰 날씨가 알려주는 때에 맞춰야 하기에 생체 리듬은 뒷전이었다. 그렇게 식물은 우리 가족에 의해 키워졌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렇게 사계절 식물들과 함께 부모님의 젊음은 사그라들었다. 


   사그라든 젊음에서 또 다른 젊음들이 자라났고 파편처럼 흩어진 그날들의 기억은 가끔 어떤 순간들을 풍성하게 해주기도 했다. 식물과 함께 자라지 않은 이들은 모르는 사계절이 가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느 계절에 불쑥 그 계절을 깊이 들여마시게 했다. 그래서 비, 바람, 서리, 이슬이 그냥 그렇게 읽히지 않고 비, 바람, 서리, 이슬 속에 영글어 가는 식물과 열매, 그리고 그것들과의 약속을 믿으며 생계를 맡긴 사람들이 함께 읽혔다. 그런 것들이 읽히는 날에 가끔 뜻모를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으며 그 눈물을 감사라고 해야할지 고단함이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차올랐던 눈물이 마르고 다시 일상의 나로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눈물과 자연을 깊이 들이마신 것 같은 순간은 참 아름다웠다.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이 나에게 있음에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홀로 된 아버지의 밭은 예전 같지 않다. 양배추, 보리, 참깨, 수박이 성수기 호텔 투숙객 마냥 체크 아웃하고 정리하자마자 체크인을 하듯 빈 밭일 때 없었는데 지금은 빈 호텔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계절마다 당연히 우리 집 식탁에 오르던 아버지 밭의 식물들도 가짓수가 줄어들더니 지금은 거의 없다. 부모님 댁에 들러서 돌아올 때 아버지가 쥐어 주시는 까만 봉지 안에는 아버지가 이웃들에게서 얻은 식물들이 담겨 있을 때가 더 많아졌다. 씁쓸하게도 가끔은 아버지가 돈을 주고 사 오신 식물들도 생겨났다. 


   놀라운 일이지만 어렸을 때 우리는 식물을 돈을 주고 사 먹은 일이 거의 없다. 삼시 세끼 밥상에 오르는 식물들은 모두 팔기 위해 키운 식물들 가운데 상품이 될 수 없는 것, 너무 많아 남아도는 것, 딱히 팔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밭 귀퉁이에 씨를 뿌리니 절로 자라난 것, 이웃들이 나누어 준 것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직접 장을 볼 때 처음에는 오이나 깻잎을 사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오이나 깻잎은 우영팥에 가면 있거나 이웃 삼춘이 주셔서 집 어딘가에 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도 이제 식물을 돈을 주고 사신다.


     아버지가 주신 까만 봉지 안에 든 그 열매가 참 낯설다. 생김새와 맛은 같지만 출처가 다르다. 아버지 밭에서 아버지가 기른 것이 아니라 공판장에서 아버지가 사고 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별 생각이 없으셨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도 느끼지 못한 그 마음이 자꾸 상상이 되어 그 봉지 안 익숙한 열매가 낯설고 얄밉다. 아버지가 키운 열매들로 트럭을 가득 채우고 공판장에 들어가 아버지 차례가 될 때까지 익숙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어제의 시세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오늘의 시세, 내일의 시세에 대한 호언장담들을 내놓으며 믹스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게 내가 아는 봉지 속 열매의 출처여야 했고 아버지의 어제여야 했다. 아버지는 빈 트럭을 몰고 공판장에 가서 딸에게 줄 열매를 다른 사람의 트럭에서 사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까만 봉지 속 열매가 아버지의 것이 아닌지 한참이 되었는데 이제야 나만 낯섦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고단함이 오르던 식탁에 이제 아버지의 처연한 낯섦이 보인다. 아니다.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은 낯섦이나 처연함이 아닐 수도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도달한 오늘의 모습을 괜히 나의 몹쓸 미안함이 처연하게 만드는 것일 수 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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