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시인 강백수 이야기
강백수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강백수의 <울산>이라는 노래를 만난 것입니다. 이 곡은 노래가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 같아서 리듬 위에 얹어진 가사를 유심히 듣다보면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범준의 <노래방에서>라는 곡이 가진 그런 매력이 있었습니다. 장범준의 <노래방에서>는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나 이중부정(아무렇지 않지 않아요.)이 무엇인지 설명할 때 자주 가져오는 곡입니다. 그리고 첫사랑 이야기를 해 달라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제 이야기인 것처럼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노래를 몰라서 무척 몰입하며 중간중간 소리도 질러가며 저도 이게 진짜 저의 첫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여기는 <노래방에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언어로 한 편의 이야기를, 한 사람을 보여주는 탁월함이 장범준의 힘이라고 느꼈었는데 이제 한 명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강백수입니다.
처음에 들었던 <울산>이라는 짧은 곡 안에 강백수의 가족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외갓집이 있는 울산이라는 공간에서 지금은 떠나고 없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모두가 가고 없을 시간에도 남아있을 '울산'이라는 공간을 표현하고 있는 곡입니다. 저에게 울산은 공업도시이자 경주에서 부산으로 갈 때 지나가는 곳 정도입니다. 그런데 강백수의 울산을 듣고 있자면 그곳이 누군가에는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온기가 머무는 곳이었다는 자각이 생기며 '울산'이라는 이름을 좀 더 따뜻하게 부르게 됩니다.
이 노래로 저는 강백수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니 유희열의 스케치북, 세바시에서 말하는 강백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세바시 강연에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 적어 봅니다.
'그냥'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그 이유가 너무 '사소'할 때 우리는 '그냥'이라고 말한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계기도, 음악을 하게 된 계기도 너무나 사소했다. 초등학교교 2학년 때 일기 쓰기가 싫어서 동시를 써서 냈고,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게 하며 칭찬을 받은 것이 장래희망 칸에 '시인'을 쓰게 된 사소한 계기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헌재라는 친구가 밴드를 하면 여고 축제 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꼬드김이 '가수'가 된 사소한 계기였다.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어서는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고, 창의력도 꾸며 쓰기에도 재주가 없었다.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술 마시고, 취하고, 토하고, 시비 붙고, 신세 한탄하는 것이 전부라서 신세 한탄을 시로, 노래로 썼다. 그 사소함에 사람들은 '진솔함' '진정성' '시대정신'이라고 말해 주었고 그것이 지금은 자신의 시와 노래가 되었다.
나의 사소한 소망은 아버지의 좋은 아들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좋은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관객석에 앉은 아버지 또래의 어른들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이 소망을 말한 뒤에 "오늘 아침에도 밥 먹고 설거지를 안 하고 나왔네요."라고 말하는 강백수의 멋쩍은 표정이 좋았습니다.
<타임머신>이라는 곡에서 자신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되었다고 자신이 잘하는 신세한탄을 하고 있지만 '쓸모'를 넘어선 가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꾸며내지 못해서 자신의 일상에서 이야기를 건저 내어 쓰는 스토리텔링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강연에서도 관찰되었습니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 관객들의 눈물샘을 움직였으며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먹고 삽니다'라는 말에 바로 휴대전화를 연 아저씨 관객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닌 줄 알면서도 내 신세에 대해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하헌재 때문이다>
-여전히 함께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 사이라서 이렇게 노래에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헤어진 친구가 잘 되면 그 사람과의 과거를 괜히 한번 더 들춰보며 그때의 나와 그의 처지를 저울질하고,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너 나 알지? 우리 아직 친구지?'라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과거와 너무 벌어져 버린 격차에 체념 하기도 하는 마음을 담은 <벽>
고3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여전히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다는 <타임머신>
강백수의 언어는 그대로 일상이며, 꾸며내지 않은 맨 얼굴 같습니다. 외출을 할 때 화장을 하고 괜찮은 척 미소를 장착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다른 사람 앞에 서지 못한 나의 맨 얼굴과 닮아있습니다. 내 안에 있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한 분명히 내 안에 꿈틀대고 있는 생각들을 재치 있게 표현하여 웃음과 공감,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대단한 꿈을 꾸지 않겠다"는 강연의 주제처럼 '사소함'을 말하는 강백수의 노래와 시가 사소함과 일상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