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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내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첫 독립출판 이야기

by 연꽃 바람

샘플 책을 골라서 여백을 재고 내지의 스타일을 정했습니다. 이제 반복적으로 정해진 스타일에 본문을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인디자인에 조금씩 익숙해졌나 싶으면 조금씩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본 단락 스타일로 본문에 들어갈 서식을 정해두었다면 복사해서 붙였을 때 바로 서식 적용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일일이 블록을 지정하고 스타일을 적용하고 다시 형태가 틀어지면 조정을 하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여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수정을 하고 싶었지만 글상자가 여백과 연동되지 않아서 또 일일이 글상자를 옮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인디자인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때그때 검색과 질문을 통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번번이 새로 만들기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눈과 어깨와 손목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본문의 내용을 절반 정도 완성했습니다.


두둥! 두 번째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표지를 구상하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고 늘 가방에 책을 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책의 '표지'에 대해 깊이 살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그 순간, 그 책을 내 가방에 담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분명 '표지'가 큰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이라는 물성에 있어서 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임이 분명한데 표지에 대한, 첫 출판물의 표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숙제를 받았으니 일단 표지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본문을 초록과 검정의 2도 인쇄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전체적인 표지의 컬러도 초록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글의 내용도 자연이나 아이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초록이 어울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에는 별로 자신이 없어서 초록색 이미지를 표지 전체에 깔고 제목만 심플하게 넣는 디자인을 떠올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참고가 될만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주셨습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저작권이 만료된 명화, 삽화 이미지를 받을 수 있는 Artvee를 알려주셔서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검색어는 "초록". 무조건 초록.

https://artvee.com/

그래서 찾은 이미지가 이 해파리 같은 초록이 들어간 <녹색 기하학>이라는 제목의 이미지였습니다. 이미지 자체로 책 표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기에 재목을 올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지를 흐리게도 해보고, 상자를 그려서 그 위에 제목도 써 보았지만 뭔가 어색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이미지에만 너무 국한되지 말고 책에 전체적인 느낌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보길 권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록'과 이미지 전체를 배경으로 깔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책'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서점 가판대에 올려졌을 때 들어 올려 펼쳐 보고 싶은 책의 표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골라 책날개와 표지, 책등이 모두 하나로 보이도록 펼쳐 보이셨습니다.


인디자인에서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지 디자인과 같습니다.

표지디자인 시작.JPG


책날개, 뒷 표지, 책등, 앞표지, 책날개로 표지를 구성한다면 5개 페이지를 만들어서 옆으로 연결하여 붙입니다. 그리고 각 부분의 크기에 맞게 폭을 조절합니다. 각 부분에 들어갈 텍스트와 이미지를 넣는 방식은 본문과 같습니다. 말은 쉽지만 색깔과 이미지, 텍스트의 배치 모두가 쉽지 않았습니다.


초록색 해파리(?)는 놓아주기로 했지만, 초록은 포기할 수가 없었기에 초록을 배경으로 하고 약간의 변화를 주면 좋을 것 같아서 사다리꼴 형태의 사각형 두 개를 앞 뒤로 배치하고 사이에 여백을 두어 어설픈 듯, 감각적인 듯이라고 우겨보는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우김에 어울리는 귀여운 오리 이미지를 Arvee에서 찾아서 표지 이미지로 넣었습니다.


이제 표지만큼 중요한 제목을 정해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과 글의 제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자연, 아이, 일상, 가족, 사랑, 육아, 소리가 주된 이야깃거리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낱말을 떠올려 봅니다. 다양성, 자연스러움, 받아들임, 사랑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삶이 사랑이고,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이 사랑의 모습도 다양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며 최초로 상상했던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는 마음이 넓은 친절한 독자인 나 자신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 제목을 정하고, 뒷 표지에는 이런 제 마음을 읽어 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의 일부 가사를 넣었습니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표지시안.jpg


이렇게 표지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글로 쓰니 굉장히 순조롭고 논리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장과 삭제, 되돌리기와 다시 되돌리기가 빙글빙글 어지럽던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초안을 올리고 보니 이것도 참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또 이렇게 한 걸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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