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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책을 골라 오세요!

나의 첫 독립 출판 이야기

by 연꽃 바람

요즘 제가 독립출판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당신만의 책 만들기>라는 이름의 5주 차 수업입니다. 브런치의 글들을 다시 다듬어서 책으로 엮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첫 번째 숙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닮은 '샘플 책'을 골라 오라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도 독립출판 코너가 있어서 거기도 기웃거려보고 집에 있는 책들도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립 출판과 관련된 책들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을 때 '이제 책은 사서 보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다. 그리고 꼭 다시 읽고 싶은 책만 구입한다'라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요즘은 도서관에도 신간이 꽤 빨리 들어오고 책 관리도 잘 되어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꼭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당장 사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때 구입하지 않았던 책은 구입할 일이 없어지고 제 책꽂이에는 선물 받은 책 외에는 신간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출판과 관련된 책을 읽고, 어제 다녀온 은유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나니 한 권의 책에 연결된 많은 사람들의 생계는 '구입'하지 않으면 위협받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좋은 책을 도서관에서 아무리 많이 빌려도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세금으로 책을 구입할 때는 정가보다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론에서 노래 한 곡을 들을 때도 저작권료가 지급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노래를 틀 때도 저작권료를 지급하는데 책에 대해서는 너무 박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누군가 책을 한 권 빌릴 때마다 그 대여 빈도에 따라서 일정 부분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도 온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샘플 책으로 고른 것은 마루야마 겐지의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입니다. 이 책은 제 책꽂이에 꽂힌 책입니다. 바다출판사에서 뉴필로소퍼, 우먼카인드, 스켑틱 1년 정기구독을 하여 사은품으로 받은 책입니다.


심플한 1도 인쇄.

표지에 사용된 버건디가 간지에도 사용되어 번잡하지 않은 느낌. 싸움과 연상되는 '피'의 이미지를 과장되지 않게 담은 듯함.

내지의 화면 구성이나 여백이 답답하지 않아서 읽는 이의 호흡을 고려한 느낌.

샘플 책의 여백을 자로 재어 자신이 만들 책의 레이아웃을 정합니다. 이 책은 산문인 듯 운문 같은 글이어서 바깥 여백을 잴 때 조금 난감했습니다. 가장 긴 문장을 골라서 바깥 여백을 쟀습니다.


잠깐 보인 책의 내용만 보아도 왜 '사는 것이 싸우는 것'인지 알겠지요? 제가 동료들과 있는 자리에서 이 책의 더 강력한 문장들을 낭독했던 적이 있습니다. 낭독이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외침을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작게 웅크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당하고 과도한 지시에 묵묵히 따르기로 마음먹은 동료가 있어서 그에게 외친 것입니다. 어차피 사는 것 자체가 싸움인데 싸우지 않겠다는 것은 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이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곳에서 싸워서 피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었죠. 물론 그 동료는 저의 핏대 세움을 '위로'로 받아들이며 쓸쓸하게 웃고 늘 그렇듯이 상사와의 싸움을 피하고 그 일을 또 한 번 묵묵히 해내버렸습니다.


샘플 책을 옆에 끼고 인디자인 프로그램에 적용하여 내지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처음 배우는 프로그램이라 유튜브에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서 전체적인 내지의 틀을 짜면 그 이후부터는 반복 작업입니다. 내용을 복사해서 그 틀에 붙이기를 반복합니다. 인디자인 프로그램 안에서는 내용 수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맞춤법도 미리 확인하고 내용도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의 렌즈로 제가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글, 뽐내려는 듯한 느낌의 현학적인 표현, 구체적인 표현 대상이 없는 뜬 구름 잡는 표현들을 거둬냅니다. 영화나 책, 드라마를 보고 쓴 글이나 강연 내용을 옮겨 적은 글들 역시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고 내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삭제합니다. 그렇게 가르고 내용을 담는 작업을 하다 보니 브런치에 쓴 글들 가운데 책으로 엮을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고른 샘플 책은 198쪽이지만 저는 130쪽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책을 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저자의 시선이 아니라 '독자의 시선'을 배웁니다. 독자로서 필요하고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저라는 독자는 거대한 세상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보다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가치나 삶의 부조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였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재인식하게 하는 글, 바로 내가 사는 이 지역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늘 하는 먹는 일, 잠자는 일, 돈을 버는 일, 읽고 보고 쓰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글들에 <나만의 책 만들기>에 담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채찍질과 '마감' 덕분에 글을 쓰고 프로그램에 담으며 이제 절반 정도의 수업이 끝났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 동안 '가제본'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게 됩니다.


마치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의 3D 초음파를 처음 보러 갈 때와 같은 설렘이 있습니다. 이게 뭐가 될지 모르는 작은 점에서 산부인과 선생님이 '이게 손이고, 저건 다리입니다' 할 때도 긴가민가 일단 '아, 보여요'라고 얼렁뚱땅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다가 대망의 3D 초음파를 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각적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동안은 아무리 상상해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눈, 코, 입이 보였습니다!


그날의 감동처럼 곧 책이 될 '가제본'을 보게 될 감동의 순간을 향해 열심히 배우고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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