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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y 03. 2022

글쓰기; 성실한 말뚝 박기

좋아하는 글의 종류를 고르라면 단연 인터뷰다. 작가와 화자는 다르다고 했다.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일을 보게 되면 그 책을 쓰고, 그 일을 해낸 사람이 궁금해진다. 내가 직접 가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다가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질문으로 그 '사람'의 그 '순간'을 분명한 '존재감'으로 드러내는 일이 인터뷰이기 때문이다. 


<일터의 문장들>에서 김지수는 인터뷰를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런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인터뷰는 레퍼런스에 대한 레퍼런스 같기도 하다. 인터뷰이가 하는 말(레퍼런스)이 인터뷰어에 의해 다시 언급(레퍼런스)되며 다듬어져 세상에 내 놓인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일터의 문장들>에서 송길영 빅데이터 분석가와의 인터뷰 꼭지는 '송길영'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그의 통찰이 빛났던 부분은 근면과 성실에 대한 언급이었다.


근면과 성실은 다른 범주군요?

  달라요. 성실은 의미를 밝히고 끈기 있게 헌신하는 거예요. 근면은 원리를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하는 거죠. 이사님이 8시에 출근하니 신입사원은 7시 반에 나오는 것처럼요.    -71쪽


근면과 성실은 실과 바늘처럼 이어져 '쿵'하고' 근면하면, '짝'하고 성실이 나오는 묶음의 단어라고 생각했다. 단단히 묶여 있어서 매우 가깝고 근접한 뜻으로 우리가 뭉쳐 사용하는 말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그 둘은 겉모습은 닮아 있지만 속은 전혀 다른 일란성쌍둥이처럼 남들에게는 서로 묶여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우리는 전혀 달라"라고 정체성을 부르짖는 전혀 다른 객체였던 것이다. 


겉으로는 '열심'과 '부지런함'으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은 이렇게 달랐다니. 게다가 어찌하여 근면이 언제나 '성실' 앞에 놓여 있던 것인지! 보통 "근면 성실"의 순서로 말하지 "성실 근면"이라고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우리를 쉽게 부리려 하는 지배계층에 의해 '너희에게 의미를 밝히는 일은 중요하지 않으니 그저 무작정 열심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열심히 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언어로 세뇌를 당한 것 같은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 차이를 이제야 알다니... 열심히 하면서도 뭔가 공허했다는 것은 나는 근면하였으나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글쓰기를 다짐하며 오늘도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나는 '성실한가?'라는 물음에 봉착한다. 열심과 부지런함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과연 '의미를 밝히고 끈기있게 헌신'하고 있는가.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글쓰기는 나에게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말뚝 같은 것이다. 나의 세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를 알지 못할 때 내가 썼던 글은 말뚝과 지표가 되어 그 곳에 있다. 어떤 말뚝은 너무 대충 박아두어서 그런지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런 순간에는 다시 더 단단한 글쓰기가 되도록 더 단단한 말뚝과 망치를 찾아 보려고 애써본다. 그 누구도 나에게 너의 세계를 넓히라는 지시를 내린 적인 없지만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해 나의 지평을 넓혀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세계에서, 오로지 나 혼자 밖에 없는 그 세계에서, 누군가에게 증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나'라는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끈기있게 헌신하는 방식이 나의 '글쓰기'이다. 이 의미를 잃지 않고 열심과 부런함으로 쓰면 '성실'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오늘 여기에 말뚝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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