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신해철이 깊숙이 다가온 사건은 대학 때 만났던 5살이 많아서 항상 "내가 너 보다 5살이 더 많아"라며 우리의 고민을 이미 5년을 앞질러 겪고 있다고 말했던 언니 덕분입니다. 언니는 90년대 학번을 가지고 전공과 대학을 바꿔가며 폭풍 방황을 거친 세 번째 대학이라 그런지 대학과 학점에 대한 태도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해가 떠 있던 수업 시간보다는 해가 진 저녁 시간에 더 정신이 맑아지고 말도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과제와 수업량이 많기로 유명했던 대학이었지만 학점 관리에 목메지 않고, 이수 기준은 맞춰주는 줄다리기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요.
무한궤도(1988), 신해철, N.EX.T(1991-1997), 노땐스(1996), 비트겐슈타인(2000-2002), N.EX.T(2002-2013), 2014.10.27. , 시월(추모밴드)을 거치며 대중들 곁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었고, 지금도 명백히 존재감을 잃지 않은 신해철의 음악 가운데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봤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마무리가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신해철의 음악이었습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곡을 다시 듣고, 다시 들어보니 더 좋은 곡을 한번 더 듣고,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를 찾아서 듣다 보니 '듣기'의 시간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두서없이 이어진 신해철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또 이야기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 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강철의 심장 천둥의 날개 펴고 결단의 칼을 높이 든 자여
복수의 이빨 증오의 발톱으로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
이미 예언된 미래조차 지킬 의지 없이는 허공에 흩어지는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제는 쉽게 살라고도 말하지
힘겹게 고개 젓네 난 기억하고 있다고
'난 기억하고 있다고'라는 가사가 마음을 울립니다. 연속성을 가진 삶을 사는 우리이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에 단절은 없습니다. 이제 쉽게 살아보려고 해도, 이제 그만 질문을 멈춰 버리려고 해도,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힘겹지만 고개를 젓고 '기억'하는 대로 꿈꾸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The Dreamer는 사실 The Rememberer 아닐까요. 꿈을 좇는 사람도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은 잊지 않고 기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생생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잊지 않은 일은 이루게 되더라고요. 원래 생각했던 완벽한 모습으로 이루지 못하더라도 꽤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한 신해철의 이력 때문인지 신해철이 쓴 곡 가사에 대해서 '개똥철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 겉멋에 들린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민물장어의 꿈> 해석 영상에서 신해철이 이야기했듯이 모든 예술 작품의 해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매번 달리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해철의 가사 역시 누군가에게는 '개똥철학'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경험이 다르고, 지향이 다르면 해석도 다르겠지요.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의 문제입니다. 신해철이 내놓은 작품들은 다른 해석으로 많은 뮤지션들을 통해 다르게 해석되어 재생산(리메이크) 되고 있고, 그의 가사에 대한 다른 생각들이 글이 되고 노래가 되어 또 다른 해석본으로 꾸준히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신해철이 <민물장어의 꿈> 가사를 쓸 때 떠올렸다고 장정일의 단편소설이 생각과 감성의 어딘가에 녹아내렸다가 이미지로 떠올랐다고 한 것처럼 분명히 신해철의 음악과 삶과 선택들도 누군가에게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외국인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납니다.
"You'll be rememered."
그때도 이 문장이 굉장히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가 아니라 '너는 기억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더욱 온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너'라는 존재가 내 안에서 씨앗이 자라서 꽃이 피듯이 제 스스로 '생명'이 되어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존재'로 있을 것이라는 예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 안에 '있을 것'이다는 확언처럼요.
이제 이 말을 신해철에게 전합니다.
"당신은 기억될 것입니다."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머리와 가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당신은 내 안에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