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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Feb 04. 2022

라떼의 미학

  커피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저의 커피 루틴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복도에 자판기가 있었습니다. 코코아, 율무차, 무려 밀크 커피가 판매되는 자판기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도 나름 카페인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당시 자판기의 커피는 마음에 드는 선생님께 수업 전에 드리는 마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기가 많은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커피를 2~3잔을 한꺼번에 받기도 했어요.


  그때 커피 자판기의 가격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200원! 저의 커피 메이트였던 친구가 엄지와 검지에 100원짜리 동전을 잡고 '200춤'이라고 이름 붙인 춤을 추면서 저를 이끌고 자판기로 향했습니다. 친구가 야자시간에 눈빛을 보내며 다가오면 조용히 교실을 나가 복도에 있는 자판기 앞에서 친구의 '200춤'과 미소를 감상하며 자판기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때의 커피는 맛이 아니라 '멋'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이컵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별 것 아닌 이야기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박장대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커피는 '라떼'입니다. 자판기가 내어주던 달달한 맥심라떼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우유 거품이 적당하게 올라간 고소한 라떼를 즐겨 마십니다. 카페라떼를 마시고 나서 커피로 다시 입가심을 하기도 하는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우유를 섞으면 커피의 맛이 달라집니다. 커피가 가진 고소함이 더해집니다. 달라지지만 커피의 본질은 분명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색깔과 입안에 담길 때의 질감이 참 좋습니다. '나는 커피다'하며 너무 대놓고 갑작스럽게 선포하던 커피의 맛과 향이 적당히 부드럽게 바뀝니다. 마치 자신의 뜻을 논리의 주단을 펼치며 상대에게 전달하는 노련한 외교관이나 연설가와 같은 맛이랄까요? 너무 강배전이 되어 쓴맛이 강한 원두도 라떼로 마시면 우유 안에서 쓴맛이 적당히 스며들어 목넘김이 좋아집니다. 카페라떼를 마신 후 혀 끝에 여운처럼 남는 커피의 맛과 향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카페 라떼가 아니라 생강라떼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특유의 향이 강하고 기침이 날 정도로 알싸한 생강도 이상하게 라떼로 마시면 그 안에 숨어 있던 단맛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쓴맛은 우유 뒤로 살짝 숨어서 얼렁뚱땅 넘어가게 됩니다. 아마 뭔가 화학적인 원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정말 그냥 기분이 아니라 맹세코 혀끝과 목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감각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보다 어른이 되어 우유 섭취량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 카페라떼에 진심이 되어 카페라떼가 맛있다는 카페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게 쿠폰을 내밀어 공짜 라떼도 몇 잔 마셨습니다. 집에도 라떼를 포기할 수 없어서 마음에 드는 우유 거품을 만들어 줄 밀크프로더도 고르고 골라 구입했습니다. 오랜만에 후회 없는 소비를 했습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도 카페라떼를 마실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구름처럼 포실한 거품이 얹어진 카페라떼가 담긴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잡으면 없던 여유가 생기고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그 느낌이 참 좋아서 조금씩 아껴 마시다가 끝내는 다 식은 커피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커피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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