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꽃 바람 Nov 28. 2022

손글씨와 화해할 수 있을까?

손글씨는 늘 어렵다. 펜을 쥐는 순간부터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쓸 내용을 생각하는 것보다 글씨 쓰는 자체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pinterest.com

어떤 내용을 쓸지 머리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손목과 손가락 끝의 저릿한 감각이 내용을 생각하는 영역보다 더 커진다. 그러면 글쓰기에 집중할 수가 없고 글씨를 쓰는 손의 고통에 집중하게 된다. 글씨 쓰기의 속도는 생각의 속도보다 한참 뒤처지게 되고,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고자 열심히 움직인 결과는 악필로 나타난다.


대학에 다닐 때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손글씨를 써야 하는 시험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왜 평행 불능자를 고려하지 않은 줄도 없는 종이를 제공하는 것인지!

 

온 신경을 집중하여 첫 줄을 나름대로 일직선으로 써 본다고 노력을 하지만 내가 쓴 활자는 파도를 치거나 혹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음 활자를 쓰기가 더욱 싫어진다. 그게 싫어서 수정테이프를 죽죽 그어보기도 하지만 속절없는 기울어짐과 수정 테이프 위로 미끄러져 더 못생겨진 글씨와 볼펜의 번짐은 나를 정말 화가 나게 했다. 


이런 나의 글씨는 매번 나를 좌절하게 한다. 손글씨로 중요한 무언가를 써야 할 때 손목에서부터 손가락 끝 관절에까지 힘을 주어 써 보지만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결과물은 늘 실망스러웠다. 타이핑을 한 듯 멋들어진 필체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읽기에 거슬리지 않도록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면서 휘갈겨 쓴 것처럼 성의 없어 보이지 않되, 글씨를 많이 써보지 않은 아이처럼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울어지지 않으면 족하다. 별 것 아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글씨 쓰기가 나에게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래서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다. 작은 쪽지에 마음을 담는 메모도 하지 않는다. 손글씨라는 흔적을 남길 기회가 오면 소스라치며 자리를 피한다. 


손글씨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짧은 구어체식 글쓰기가 참 어렵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짧게 보낸 카톡이나 문자메시지에 답하는 것이 더 어렵다. 카톡의 1을 사라지게 한 나의 엄지 손가락을 탓하며 짧은 순간 순발력을 발휘해서 읽음에 대한 답을 쓰는 일이 너무 힘들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때 꼭 기록을 하는 편이다. 그런 기록은 타이핑하는 것보다 손글씨로 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줄공책에 두서없이 적고, 화살표로 연결하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기록을 한다. 그냥 편하게 줄에만 맞춰서 글씨를 쓰자고 생각했지만 자꾸 줄을 벗어난 글자가 생겨나고 그어진 줄을 보면서도 수평 불능의 본능은 어디서 나오는지 글자들은 자꾸 오른쪽 아래로, 오른쪽 위로 치우쳐 간다. 리을을 자꾸 어그러져 가고, 티읕은 모양을 알아보기 어려워 다시 한번 덧쓰고 모음들은 자꾸 찌그러진다. 그럼에도 나의 기억을 믿을 수가 없어서 기록을 멈출 수가 없다. 


강의가 끝나면 힘주어서 쓴 글씨들 탓에 마른 낙엽 같아진 종이를 한번 들추어 본다.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사라락 소리를 내며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 소리는 참 좋지만 종이에 적힌 글씨들은 다시 보기가 싫어진다. 누군가는 기록을 하고 자신의 필체가 가득 찬 종이를 보면 뿌듯하다지만 나는 그 필체와 화해할 수 없다.


언제부터 이런 필체를 가지게 된 것인지 궁금해서 어렸을 때 썼던 공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의 필체 보다 조금 더 흔들리듯 썼지만 분명히 같은 필체의 글씨들이 그곳이 있었다. 공책의 줄 간격이 좁아서인지 글씨가 조금 작다는 것, 지금은 두꺼운 펜을 좋아하는데 그때는 얇은 펜을 좋아했던 것인지 글씨가 얇아서 더 흔들거리고 바닥에 닿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 달랐다. 


지금 이 글도 손글씨가 아니라 타이핑을 하며 쓰니 편안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필체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필체로 이 글을 써야 한다면 오른손이 경직되고 마음 한 곳은 울화가 터지고 머리는 그 두 부조화로 인해서 지끈 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쓴 손글씨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손글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뒤집어진 디귿이 자주 등장하고, 기역과 니은을 가끔 헷갈려하며 쓴 아이의 일기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커다란 간격의 줄이 있지만 늘 그 줄 위에 놓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진 '엄마, 사랑해요'라는 아이의 짧은 글은 언제 보아도 웃음이 난다. 


가끔 택배를 받을 때 그 안에 손으로 쓴 메모지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손글씨로 적혀 있는 그 마음을 자꾸 들여다본다. 문장은 별 것 아닌데 그 사람의 손에 쥔 볼펜이 종이 위에 사각 거렸을 시간과 공간을 어루만지듯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택배 상자 위에, 대형폐기물 스티커 위에, 부의금 봉투 위에 적힌 사람들의 손글씨는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 손글씨가 말로 담지 못한 그 사람의 무엇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의 손글씨를 통해서 나의 어떤 부분을 발견할 것 같아서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글씨는 그냥 글씨일 뿐이라고 나의 손글씨와 잠시 휴전을 한 상태이지만 그런 기분이 들 때는 다시 한번 뜯어고쳐 보기로 마음먹고 덤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마음먹고 덤벼보아도 언제나 백전백패였기에 이제는 싸우지 않고 화해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나는 나의 필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의 손글씨와 정말 화해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라떼의 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