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도 재미있지만 그의 생애도 꽤 흥미롭다.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이 1867년 2월에 50세의 아버지와 41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소세키가 태어난 날과 시가 도둑이 될 사주라는 미신이 있었고 후처인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그렇게 환영받는 탄생은 아니었다. 소세키의 본명인 '긴노스케'는 도둑이 될 사주를 막기 위해 이름에 金자를 넣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를 이를 아들들이 4명이나 있었고 딸도 3명이나 있던 터에 후처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 소세키는 바구니에 담긴 채 동네 고물상에게 입양된다. 그런데 소세키의 누나가 길을 가다가 바구니에 담겨 우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첫 번째 입양은 끝난다.
1968년(1세) 바야흐로 메이지 시대가 열린다. 에도 시대에 촌장을 하며 지내던 나쓰메 가문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나쓰메 가문의 하녀와 서생이었던 시오바라 마사노스케가 결혼을 하였는데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에 돈을 받고 양자로 보내진다.
1876년(9세) 소세키의 양부는 돈 많은 미망인의 재정 관리를 해주는데 그러다가 가정 불화가 생겨 이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양어머니와 소세키는 다시 나쓰메가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미 부양을 해 줄 아들이 있었던 친아버지는 호적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양아버지인 시오바라에게 소세키의 양육비를 받았다. 시오바라 역시 아들이 없는 노후가 걱정되었기에 호적을 정리해주지 않아서'시오바라 긴노스케'로 지낸다. 이때까지 소세키는 친부모를 조부모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1887년 (20세) 나쓰메가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죽는다.
1888년 (21세) 두 아들을 잃고 노후가 걱정이 되었는지 친아버지는 양아버지인 시오바라에게 과거의 양육비로 받아왔던 돈을 250엔으로 정산하여 주고 호적을 정리한다. 돈을 주고 아들의 호적으로 되찾은 것이다. '나쓰메'라는 성을 되찾게 된다.
소세키에게 이 시는 굉장한 혼란이었다. 양자로 여기저기 보내지고, 혈육이나 애정이라기보다는 서로의 필요와 '돈'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들이 좌지우지하는 시간들이었다. 소세키의 '돈'에 대한 혐오와 '돈'이 없음에 대한 불안이라는 모순적인 태도가 이때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나 특히 생명을 낳고 기르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태도들도 이런 경험에서 기인한 것 같다.
1889년(22세) 영혼의 친구인 마사오카 시키를 만난다. 소세키(漱石)라는 호는 마사오카 시키가 사용했던 필명 가운데 하나였다. 수석침류(漱石枕流)에서 따온 말이다. 소세키라는 이름은 "흐르는 물로 베개를 한다"는 뜻이며, 제대로 되지 않은 '은거'이자 이상한 '고집' 지적으로 양념된 '말장난'이 담긴 이름인 것 같다.
침석수류(枕石漱流)란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이를 닦는다는 뜻으로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옛이야기 가운데 어떤 사람이 친구에 이 표현을 잘못하여 수석침류라고 하였고 친구가 이를 지적하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고사까지 예로 들어가며 그럴싸한 변명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표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고집을 부림’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892년(26세) 다카하마 교시를 알게 된다. 다카야마 교시는 마사오카 시키의 제자이자 나쓰메 소세키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인물이다. 첫 번째 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하게 된 잡지 [두견새]의 일원이기도 하다.
(좌) 마사오카 시키 (우)다카하마 교시
1895년(28세) 마쓰야마 중학교에 당시 교장 선생님 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부임한다.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교사가 시골에 부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쓰메 가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1년여를 있는 동안의 경험이 <도련님>에 녹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마쓰야마는 '소세키'의 도시가 되어 이곳저곳 그와 관련한 관광지가 많다고 한다. 마쓰야마보다 구마모토 시절이 더 길었지만 이상하게도 구마모토가 아니라 마쓰야마가 나쓰메 소세키의 상징이 되었다.
1896년(29세) 쿄코와 결혼을 하여 구마모토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33세의 나이에 문무성 유학생으로 영국에 가기 전까지 4년 3개월간 구마모토에서 지낸다. 그 사이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특히 아내인 쿄코의 유산, 자살시도가 있었다. 소세키는 결혼에 적응하지 못했도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굉장히 불안한 시기를 보낸다.
1900년(33세) 문무성 유학생으로 영국에 가게 된다. 에도 시대에서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와 격동의 일본을 살던 작가는 신세계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흙길 위에 인력거가 달리는 일본을 떠나 늦은 나이에 철도 위를 달리는 기차가 있는 영국을 경험한다. 소세키는 그곳에서도 부족한 유학비로 경제적 어려움과 고독을 경험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탐닉하며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한 소세키의 방황의 모습은 '소세키가 약간 미친 것 같다'는 말로 전해졌다.
1903년(36세)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영어 강사가 된다. 제1 고등학교 강사, 도쿄제국대학 강사를 겸임했고, 다른 대학에도 출강했다. 기울어진 가세와 유학생활에서 진 빚을 갚아야 했다.
앵커브리핑에 등장했던 라프카디오 헌의 이야기가 바로 이 시절 나쓰메 소세키와 겹쳐진다. 라프카디오 헌에게 있어 꿈의 나라인 일본이 악몽이 되는 그 순간이 나쓰메 소세키에게는 생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제1 고등학교 강사시절, 제자인 후지무라 마사오가 게곤 폭포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신경 쇠약 증세가 도지며 때로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교쿄는 당시까지 딸 둘을 낳은 상태였고, 이 해에 셋째 딸을 낳는다. 제자의 자살 사건은 소세키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 후 작품에서도 자살이 등장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자살 소동이 그려진다.
1904년(37세) 고양이 한 마리가 소세키의 집에 들어온다. 발바닥에 검은색 점이 있는 고양이라서 재물을 부른다는 미신을 믿고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 나중에는 이 고양이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으며 1908년 9월 13일에 고양이의 장례식을 열고 지인들에게 장례식 초대장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번째 장에도 고양이 얼룩이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소세키의 삶 곳곳에는 이런 미신스러운 구석이 꽤 많다.
1905년(38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카하마 교시가 만든 잡지 [두견새]에 발표하게 된다. 고양이와 그 고양이 주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일본의 각 계층에 대한 풍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세키의 개인적인 경험인 버려짐, 입양의 이야기도 드러난다.
이 이야기의 첫 문장인 "나는 이름 없는 고양이이다"와 마지막 문장 "나는 절대로 쥐를 잡지 않을 것이다"로 보아 고양이의 입을 빌려 주변인들의 모습과 고양이의 인생관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일본의 모습을 빗대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것 같다. 계속해서 연재할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고등유민'이라는 인간상을 제시하며 많은 소설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표현한 소세키 역시 그런 삶을 선망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이름 없는 고양이의 주인인 '구샤미'(재채기란 뜻)의 옹색한 삶에 대한 묘사나 그의 직업인 선생에 대한 묘사를 보며 그가 '선생'이라는 직업에 부정적인 태도를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기업가인 가네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 또한 '돈벌이'를 낮게 보는 인식도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세키 자신은 '돈'을 삶의 중요한 선택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으니 모순적이다. '고등유민' 또한 현실에서 완전히 멀어진 은둔의 삶과는 달리 현실 속에서 신문물을 즐기며 학문을 논하는 한량의 모습으로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여유'를 지닌 사람들이 누리는 삶이기 때문에 그 삶을 떠받치고 있는 '돈'과 '노동'에 가치를 낮게 보는 것도 모순이다.
1907년(40세) 드디어 자신과는 맞지 않았던 가르치는 일을 전부 그만두게 된다. 더 나은 벌이를 찾았기 때문이다. 아사히 신문의 전속 작가가 된 것이다. 100회 정도의 연재소설을 쓰는 전속작가가 되어 글만 쓰는 삶을 살게 된다. 실제로 그가 고등유민의 삶의 살게 된 것이다.
1916년(49세)에 위궤양이악화되어 사망한다. 사망 당시 그의 뇌와 위는 당시 도쿄제국대학 의학부에 기증되어서현재까지도 도쿄대학에 계속 보관되었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다. 언문일치와 사소설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2004년까지는 천 엔 지폐의 인물이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가 일본의 근현대문학을 이끌었다고 하지만 과연 나쓰메 소세키 본인인 '근대인'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는 영국신사처럼 양복을 입고, 전철을 탔다. 하지만 <만한 여기저기>에 드러나는 편협한 세계관이나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남성우월주의와 계급의식을 보면 그는 메이지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의 정신의 일부는 여전히 봉건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또 그런 모순과 불일치가 주는 묘한 어긋남이 나쓰메 소세키를 읽은 재미가 되기도 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는 번역가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문체를 읽으면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살랑이는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먼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환상의 세계나 무릉도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뚝 떨어져 명상처럼 독서를 하고 싶을 때 그의 책을 찾게 된다.
최근에 읽었던 <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현실과 개연성을 가진 이야기이며 심지어 현존했던 건축가의 이름과 실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만 그 소설을 읽으면서도 두둥실 내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에 가 닿은 느낌이었다.
휴머노이드 과학자들이 말하는 언캐니밸리 같은 느낌이다. 뭔가 유사하지만 확실하게 다른 어떤 지점이 있어서 사람과 비슷한 면이 훨씬 많지만 확연하게 다르고 두려움을 주게 하는 어떤 작은 지점에서 다르다는 느낌,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지점인 언캐니밸리.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역시 그런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분명 묘사하는 세계와 인물들을 현실을 닮아 있지만 어떤 묘하지만 확연하게 현실과는 다른 어떤 지점이 확실히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감각을 준다. 그 감각이 좋아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