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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훈 Apr 06. 2020

국민총행복기본법을 제정하자!

GNH위원회, 행복특임장관 신설해야

사진 pixabay.com

최근 OECD 더 나은 삶 연구소(Better Life  Institute)가 발표한 <2020년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 in 2020?>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조사대상 OECD국가 중 최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0점에서 10점 사이로 점수 매겨 보라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평균  6.10점을 주었다. 이는 조사대상 33개국 중 터키(5.70)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필요할 때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의 19%로 OECD 평균(9%)의 두 배가 넘었다. 이는 조사대상 41개국 중 그리스(22%)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국민 5명 중  1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뜻이며,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연동되는 지표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계층별, 남녀간, 세대간, 교육수준별  불평등이 OECD 평균 대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은, 출산·보육·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져 ‘기회의 불평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계층·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져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사회 전반에 박탈감과 분노, 차별과 배제의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내일은 UN이 정한 <세계행복의 날>이다. UN은  지난 2011년 7월 총회 결의를 통해 GDP를 넘어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 공공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결의했다. 또한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하고, 다음 해 부터 매년 이날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하기  시작했다(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 나라는 매년 55위~60위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뉴질랜드가 처음 깃발 올린 웰빙(행복)예산제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행복을 국정의 주요목표로 삼는 나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예산을  책정함에 있어 행복을 국가 주요 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이제 세계 보편적인 추세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도 이 추세에 발맞추어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성장지상주의와 결별하고, 국민총행복(GNH)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는 현 정부에게만 요청하는 내용이 아니다.  국민(총)행복은 특정 정권의 정책 목표가 아니라, 어떤 정부든 마땅히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기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몇 달  후면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는 데 정부와 21대 국회는 국민행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데 함께 힘 모아주시기  부탁드린다.


‘국민총행복기본법’을 제정하자. 이 법은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우리 국민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재확인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국민총행복을 위한 책무를 정하고  행복정책의 수립·조정 및 지원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국민총행복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국민총행복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각 부처 수장들과 각계각층의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직으로,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최상위  민관협치기구’로서, 또한 모든 정책을 국민행복의 관점에서 심사·의결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행복특임장관(행복부)’도 신설하자. 행복정책의 수립과 이행  평가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행복특임장관(행복부 장관)은 위원회의 부위원장 역할을 수행함은 물론, 단순한 상징적 지위를 넘어  정책과 예산 등과 관련 실효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세’를 도입하자.‘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부유한 이를 위해서도 ‘행복세’는 필요하다. 증세를 통한 재분배를 통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일정하게 해소함으로써 아직 행복하지 않은  이들의 행복을 제고시킬 수 있으며, 불평등으로 인해 초래될 사회적 비용을 미리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필요하다.


*이 글은 3월 19일자 <한겨레>에 실린 기고문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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